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May 25. 2016

16-70 『바다여, 바다여』_아이리스 머독

227

2권 - p383
바다가 부드럽게 출렁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슬프고도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누워 있노라니 별들이 자꾸만 더 많이 모여들어서 뚜렷하게 보이던 은하수를 가리고 하늘 전체를 가득채웠다.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진 금빛 대양 속으로 별들이 소리 없이 반짝 빛났다가 떨어져 수억만 개의 혼합된 금빛 사이에서 그들의 운명을 찾아가고 있었다. 엷은 커튼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내 청년기의 마술 같은 오데온스 극장 안에서처럼 나는 별들 뒤에 있는 별들과 그 별들 뒤에 있는 또 다른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광활하고 부드러운 우주의 내부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에서 바깥으로 뒤집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노랫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영국의 작가 아이리스 머독의 부커상(현재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민음사 북클럽 선물로 1권을 패밀리데이에서 2권을 들고왔고 거의 2주간 읽은 것 같다. 


1권이 390, 2권이 430쪽으로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양이 가장 많은 동시에 활자수도 가장 많다. 페이지마다 가득 찬 글자들은 주인공인 은퇴한 유명 연극 연출가 '찰스 애로비'의 생각이며 글이며 말이다. 


사랑에 대한 상실과 여성들에 대한 지배욕을 두루갖춘 찰스가 혼자 지내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모습은 여유롭고 넓은 마음과 회한을 가진 한 남자로 비춰지지만, 하틀리를 만나고 연극계의 여성들과 친구들 사촌 제임스 등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우스꽝스럽고 병적인 집착증세까지 가진 남자로 비춰진다. 

독단적이고 권력욕으로 연극 배우들을 지배하던 그의 진면목이 그렇게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드러난다. 찰스 애로비는 그렇게 한명의 노신사에서 고집스럽고 집착하고 버리고 다시 집착했던 한명의 독재자로 변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어떤 곳은 소설처럼, 어떤 곳에선 희곡처럼 작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특히 동성애자인 배우 길버트가 그의 집의 하인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제임스와 타이터스와의 대화에서 그렇다. 그리고 그가 바다의 괴물을 보고 상상하는 것들, 제임스와의 철학적 대화에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이 책을 어떻게 나의 기록으로 남겨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800쪽이라는 양을 읽는 것은 오래걸리는 일이었으나 보르헤스의 <픽션들>보다 수월했고 말없이 이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루하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다. 어딘가는 희극이고 어딘가는 비극이었다. 

찰스가 하틀리에 집착하는 것은 어딘가 비정상이었으나 나에게도 존재하는 나의 순수하고 진실했던 첫사랑이 생각난 것에 멍해지고 말았다. 책의 말미에 제임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갑작스런 일이었으나 그렇게 되는 일이었다. 큰 비중이라 여기지 않은 그의 비보가 전해질 때 내 가슴 어딘가가 뭉클했다. 찰스 애로비의 삶, 어리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바닷가 삶에 이르기까지 제임스는 어디서나 존재했다. 찰스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화해에 이르면서 찰스와 제임스 두 사람의 삶이 숙명으로 다가왔던것 같다. 그의 죽음은 마치 한쪽 팔이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무게가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바다가 바라보는 곳에서 하틀리를 다시 만나고 지난 연인들과 사촌 제임스와 타이터스를 만난다. 바다의 환영을 바라보고 바다가 앗아간다. 그의 지난 삶이 그렇게 바다의 곁에서 정리되고 산화된다.


바다의 곁에서 삶을 정리하고자 했던 찰스 애로비의 삶이 분해되고 산화되어 정화되었다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던져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삶은 끝나지 않고 사건은 정리되면서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지만 누군가는 떠나고 이기적인 기억은 쪼개지고 부끄러운 것과 자랑스러운 것이 뒤바뀐다. 


2권 - p427
인간의 허영, 인간의 질투, 인간의 탐욕, 인간의 비겁함이 다른 사람들을 올가미에 씌우기 위하여 얼마나 수많은 치명적인 원인의 사슬을 이 지구상에 깔아 놓았을까! 내가 바다에 가면서 세상을 등진다고 상상했던 것이 이상스럽다. 그러나 사람은 한 형태로 권력을 포기하고 또 다른 형태로 권력을 잡는다. 아마 제임스와 나는 어느 면에서는 똑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는 다시, 그리고 계속 생각해봐야 할 책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나면 종종 그 무게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올해 읽은 <깊은 강>, <자기 앞의 生>과 그 무게가 다르지 않다. 







덧. 
그들의 공백만큼은 아니지만 나의 공백이 게속해서 멈추지 않고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226 우리는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