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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Aug 15. 2016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252, 16-101

사후 25년이 지나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2년만에 부인이 공개한 유진 오닐의 마지막 희곡으로 그에게 네번째 퓰리처상을 수상케 한 작품입니다.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마약 중독자였던 어머니, 자신의 우상이었던 첫째 형과 자신이 세상에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난 둘째 형까지... 작품해설까지 읽고나면 그의 가족을 그대로 이름만 바꿔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허영(땅)에는 관대하지만 부인과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구두쇠인 아버지와 마약중독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답답한 그의 시선, 한때 무능했던 자신의 과거까지 적나라하게 들춰냈으니 사후 25년이란 기간이 이해됩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티론 가족의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아마도)까지의 일을 다룹니다.
아침 식사 후의 티론부부의 대화는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늦게까지 아침 식사를 하는 두 아들의 대화소리를 거론하면서부터 균열이 하나씩 발견됩니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은 두 아들.
막내 에드먼드의 병색.
메리(티론부인)의 마약중독.
티론의 자기중심적 절약.
일찍 세상을 뜬 둘째 아들 유진.
순회공연 중 부인을 싸구려 호텔과 싸구려 의사에게 방치한 제임스 티론.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첫째 아들.
폐렴인 둘째 아들을 싸구려 요양원에 넣고싶은 아버지.
수녀나 피아니스트가 되고싶었지만 지금은 마약을 참지 못하는 메리.
전기를 아끼라며 소리지르지만 부동산 업자에게서 또 다시 땅을 산 티론.


전등불 하나도 아끼는 아버지는 막내아들 에드워드의 요양원 입원도 가장 싼 곳으로 정한 그날 오후 부동산 업자에게서 또 땅을 삽니다. 

뭐랄까... 사실 저도 이 희곡을 읽으면서 내심 저희 아버지를 대입하게 되더랍니다. 베이비붐에다 독재와 절약이 미덕이기만 하던 시대만 살아온 아버지의 이해 못할 행동들이 티론의 모습에서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고.. 떠오르고...


p172
에드먼드 : 누구 탓인지도 알죠! 바로 아버지예요! 아버지의 그 빌어먹을 인색함 때문이라고요! 어머니가 저를 낳고 심하게 아팠으 때 괜찮은 의사를 불렀다면 어머닌 이 세상에 모르핀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아버진 호텔 돌팔이한테 어머니를 맡겼고, 그 돌팔이는 자기가 무식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제일 쉬운 방법을 쓴 거예요. 나중에 어머니가 겪게 될 일을 신경도 쓰지 않고요! 그게 다 싸기 때문이었죠! 아버지는 맨 싸구려만 찾으니까!




p177
에드먼드 : 하디 선생이랑 그 전문의도 아버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다 알고 있어요. 아버지가 양로원 타령을 하면서 저를 자선 기관에 맡기고 싶은 뜻을 비추었을 때 그들이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네요!
티론 : 헛소리! 난 땅만 가졌지 가난뱅이라 백만장자들이나 가는 요양소에 보낼 형편은 못 된다고만 했어. 그게 사실이고!
에드먼드 : 그러고 나서 클럽에 가서 맥과이어한테 넘어가서 또 땅을 샀고요! 거짓말할 생각 마세요! 아까 호텔 바에서 맥과이어를 만났으니까. 형이 아버지한테 한 건 올렸냐고 농담하니까 눈을 찡끗하면서 웃더라고요!




p181
에드먼드 : 그래요. 특히 '지미 더 프리스트'에서 자살 기도를 했다가 진짜 죽을 뻔했을때는요.
티론 : 그때 넌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 아들이라면 절대 그런짓은…… 넌 취한 상태였어.
에드먼드 : 아주 말짱했어요, 그게 문제였죠. 너무 오래전부터 생각을 멈췄으니까요.



티론은 주객전도의 사고방식을 가졌습니다.
잘못된 상황이 아닌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잘못을 저질렀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그렇게 됐다는 식이죠.


p188
에드먼드 : 아버지보고 웃는 거 아니에요. 인생이 우스워서요. 인생이 지랄 같잖아요.




밤늦게 첫째 제임스를 기다리던 티론과 에드먼드의 대화가 이 희곡의 절정이었습니다. 결국 에드먼드는 주립 요양원이 아닌 기업의 사립으로 들어가기로 합의하죠. 그리고 제임스가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고 그리고 메리가 19살 결혼식에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2층 계단에서 내려옵니다. 마약에 가장 깊이 취한 반짝이는 눈빛을 띄고 말이죠.



저는 에드먼드의 입장에서 이 희곡을 읽었습니다.
유진 오닐의 입장이기도 할겁니다.

저도 실제 집에서 둘째 아들이죠.
저정도로 수전노에 마약중독인 어머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주머니'를 쥐고 흔드는 기성세대에 대한 답답함은 같다고 해야겠죠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거울같은 희곡이라 
<한 명>에 이어 뭔가 뭉친듯한 기분이 아직도 듭니다.

그러면서도 제임스 티론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시대를 견디고
그 강력한 후유증을 지병처럼 지니고 사는 아버지 세대
기성세대를 더 이해하고 인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밤을 향해 치닫는 
단 하루의 가족일상, 갈등인데도
많은 생각, 숙제를 남기는 책이었습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를 보고 난 후의 그 기분입니다.
필립 글래스의 OST는 아직도 종종 듣는데
<밤으로의 긴 여로>와도 참 잘 어울립니다.



https://youtu.be/-uxIWToq7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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