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Aug 12. 2016

김숨의『한 명』 - 위안부 피해를 그린 용기

250, 16-99 - 출판사는 현대문학

p21
그들은 못판으로 석순 언니를 굴렸다. 발가벗겨진 석순 언니의 몸에 못들이 박혔다가 뽑히면서 생긴 구멍들에서 피가 솟구쳤다. 
 해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녀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금복 언니의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들부들 떨던 기숙 언니가 비명을 지르면서 풀썩 주저앉았다. 
 석순 언니가 못들 위에서 한 바퀴 돌 때 하늘과 땅이 덩달아 돌았다. 하늘이 소녀들의 발밑에 있었다. 까마귀보다 작지만 까만 새들이 소녀들의 발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들에게는 소녀를 죽이는 게 개를 죽이는 것보다 아깝지 않았다.

 그들은 석순 언니를 땅에 묻지 않고 변소에 버렸다.
 그들은 죽은 소녀에게는 땅도 아깝고, 흙도 아깝다 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서였습니다. 소설가 김성종씨의 원작을 바탕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학PD가 연출을 맡은 대작이었죠. 드라마는 위안부를 태운 기차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영상으로 접한 충격적인 장면은 나이들어 뉴스나 기사로 접했을 때보다 강렬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드라마는 731부대, 빨치산, 전쟁의 극한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드라마 초반의 위안부 시설에서의 장면만큼 잔혹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인이 일을 마치면 여옥은 힘들게 몸을 끌어내 물을 받아 세척을 하고는 침대에 기대 애끓는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른 방의 소녀들은 미치거나 저항하다 칼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마지막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명마저 세상을 뜨는 소식을 접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차마 앞에 나서서 "내가 피해자요."라고 할 만한 힘이 없었지만 그 마지막 한 명이 없어지지 않길 바라는 열망은 가득 있습니다. 할머니는 사죄받지도 보상받지도 못했으니까.


-
p71
아무리 많이 먹었어도 열세 살은 안 되었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그때 고작 열세 살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만주 위안소에서 한번은 술 취한 장교가 주머니칼을 꺼내 들더니 그녀의 아래를 쭉 찢었다. 겨우 열세 살이라 자신의 성기가 잘 안들어가니까.




소설은 역겹습니다. 구역질이 납니다. 그정도로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읽고 나서 또 다시 역겹습니다. 그 진실을, 사실을 절반정도밖에 모르면서 화를 냈으니까요. 

김숨 작가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글을 써내려갔을지, 

글자로 바뀐 이야기를 증언한 할머니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게 뱉어냈을지, 견뎌냈을지, 겪어냈을지.

글자로만 읽었는데도 이렇게 역겹고 구역질이 나는 고통을 옆에서 보고 겪었던 분들이 한분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위안부 합의를 이용해 또 다시 할머니들을 팔았습니다. 

'맛있는 밥과 돈도 줄테니 오세요.'


p25
눈을 감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녀는 잠들려 애쓰지 않는다. 인간이 잠을 안 자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그녀는 온전히 잠들었던 적이 없다. 몸뚱이가 잠든 동안에는 영혼이, 영혼이 잠든 동안에는 몸뚱이가 깨어 있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들을 
돈 버는 공장으로 꾀고 
때론 납치해서
전쟁의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가장 참혹한 곳에 집어넣었습니다.


p82
생리 때도 소녀들은 군인을 받았다. 메추리알처럼 둥글게 만 솜뭉치를 질 속 깊이 밀어 넣어 피가 흐르지 않았다, 군인들을 받는 동안 솜뭉치는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갔다.



 일본은 20만명의 소녀들을 전쟁의 노리개로 삼았는데, 그중 2만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한테 '씹'으로 돈을 번 더러운 여자들이라고 매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교수는 자발적으로 돈벌러 나간것이라고 했습니다. 

-

소설을 읽으면서는 일본과 이를 거짓이라 왜곡하는 일본인들에게,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발바닥에 붙은 껌처럼 불편해하며 빨리 떨어내려는 정치인들에게 역겨움을 느낍니다. 


-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 희생의 넋에 대한 진혼제처럼 느끼며 그렇게 읽었습니다. 김숨 작가의 <한 명>은 그럴수가 없네요. 물론 그렇게 쓰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할머니들을, 피해자들으 그나마 518처럼 대해 준 적도 없으니까요.



p186
밤에는 인두처럼 뜨거운 물로 아래를 지져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래가 손가락이었으면, 그녀는 벌써 잘라버렸을 것이다.
수건으로 아래를 훔치다 말고 흠칫한다, 성긴 음모에 방울방울 자잘하게 맺힌 물방울들이 사면발니인 줄 알았다. 
씻었는데도 그녀는 자신이 더럽게 생각된다.
김학순 그 여자의 남편은 자식이 듣는 데서도 자신의 아내에게 '더러운 년'이라고 욕을 했다고 했다.


-

한국의 목소리 문학, 
그 목소리 문학은 왜 이리도 목이 메이는걸까요

이 어려운 소설을 쓴 김숨 작가와
이 어려운 소설을 출판한 현대문학의 용기와 노고에 고개를 숙입니다. 

p9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둘이었는데 간밤 한 명이 세상을 떠나.

매거진의 이전글 249 꼴리는대로 존맛 존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