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16-103
p8
이 부장이 처음 오르가슴을 느낀 것은 그의 나이 마흔여섯 때였다. 그 순간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불이 켜진 것 같았어."
<자기 개발의 정석>은 전립선 질환을 의심하며 비노기과를 찾아간 이과장이 치료기구로 받은 전립선 마사지 기구인 '아네로스'를 통해 드라이 오르가슴이라는 자기위안(?)의 기쁨을 얻고 그 기쁨(?)의 언저리를 돌며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 임성순 작가의 소설입니다.
읽자 읽자 하다가도 미리 들은 그 줄거리에 뭔가 화끈거려 오래 묵혀놨다 드디어(?) 읽게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네요.
p33
최악이라는 단어조차도 이 부장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다 큰 어른이 다른 남자 앞에서 사정없이 사정하는 일은, 사정상 사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해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소설에 나와있는 바에 따르면 아네로스를 통해 '환희의 절정(?!)'에 이르는 것은 선택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gift라고 하네요.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이웃으로 삼은 민음사 블로그에서 <자기 개발의 정석>관련 작가와의 시간을 열면서 성인용품 샾을 소개한 적도 있었죠.
p53
하지만 서서히 밀려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 내년에는 팀과 재계약을 하지 못할 터였다. 그것이 쓸모가 없어진 자들의 운명이었다.
기러기 아빠 이 부장으로 대변되는 욕구불만에 갇힌 아버지세대, 자식의 사정에 매몰된 이 부장의 아내로 대변되는 어머니 세대, 과잉신앙에 자기위안마저 거세당한 고2 여드름.
p142
"엄마가 자위를 하면 사탄이라고 했거든요."
"그렇지!"
"네?"
경찰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주 귀고리를 바라보았다. 진주 귀고리는 왜 그런 표정으로 보내냐는 듯이 경찰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위는 악마가 유혹해서 하는 거라고요.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다 지옥불에 떨어질 겁니다."
"그럼 얘 또래 남자 애들은 99.9퍼센트가 지옥에 갈 겁니다.
"우리 애는 안 가는 0.01퍼센트예요."
몇몇으로 대변되는 개인의 욕구 소외(?)를 훔쳐보는 듯한 아슬아슬함으로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p72
" …(상략)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행복해질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야말로 짐승 같은 이 사회의 소금같은 존재입니다!"
덧붙이자면,
여드름의 엄마인 진주 귀고리가 하는 말이 직설적이긴 한데 현대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저런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부리는 성적 유혹을 떨치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소변으로 나와서(?) 성적 욕구가 깨끗하게 줄어드는 역사(?)를 경험했다는 아무개 집사의 간증을 소개하는 목사가 생각나는군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단 한명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임성순 작가가 욕구를 통제 당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보편성을 말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