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Aug 17. 2016

『자기 개발의 정석』 - 임성순

255, 16-103

p8
이 부장이 처음 오르가슴을 느낀 것은 그의 나이 마흔여섯 때였다. 그 순간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불이 켜진 것 같았어."



<자기 개발의 정석>은 전립선 질환을 의심하며 비노기과를 찾아간 이과장이 치료기구로 받은 전립선 마사지 기구인 '아네로스'를 통해 드라이 오르가슴이라는 자기위안(?)의 기쁨을 얻고 그 기쁨(?)의 언저리를 돌며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 임성순 작가의 소설입니다.

읽자 읽자 하다가도 미리 들은 그 줄거리에 뭔가 화끈거려 오래 묵혀놨다 드디어(?) 읽게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네요. 


p33 
최악이라는 단어조차도 이 부장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다 큰 어른이 다른 남자 앞에서 사정없이 사정하는 일은, 사정상 사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해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소설에 나와있는 바에 따르면 아네로스를 통해 '환희의 절정(?!)'에 이르는 것은 선택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gift라고 하네요.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이웃으로 삼은 민음사 블로그에서 <자기 개발의 정석>관련 작가와의 시간을 열면서 성인용품 샾을 소개한 적도 있었죠.



p53
하지만 서서히 밀려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 내년에는 팀과 재계약을 하지 못할 터였다. 그것이 쓸모가 없어진 자들의 운명이었다.

기러기 아빠 이 부장으로 대변되는 욕구불만에 갇힌 아버지세대, 자식의 사정에 매몰된 이 부장의 아내로 대변되는 어머니 세대, 과잉신앙에 자기위안마저 거세당한 고2 여드름.

p142
"엄마가 자위를 하면 사탄이라고 했거든요."
"그렇지!"
"네?"
경찰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주 귀고리를 바라보았다. 진주 귀고리는 왜 그런 표정으로 보내냐는 듯이 경찰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위는 악마가 유혹해서 하는 거라고요.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다 지옥불에 떨어질 겁니다."
"그럼 얘 또래 남자 애들은 99.9퍼센트가 지옥에 갈 겁니다.
"우리 애는 안 가는 0.01퍼센트예요."



몇몇으로 대변되는 개인의 욕구 소외(?)를 훔쳐보는 듯한 아슬아슬함으로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p72
" …(상략)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행복해질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야말로 짐승 같은 이 사회의 소금같은 존재입니다!"



덧붙이자면,
여드름의 엄마인 진주 귀고리가 하는 말이 직설적이긴 한데 현대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저런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부리는 성적 유혹을 떨치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소변으로 나와서(?) 성적 욕구가 깨끗하게 줄어드는 역사(?)를 경험했다는 아무개 집사의 간증을 소개하는 목사가 생각나는군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단 한명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임성순 작가가 욕구를 통제 당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보편성을 말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54 선험적 정보의 차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