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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Aug 29. 2016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마누엘 푸익

258, 16-109

p10
"나한테 중요한 것이 당신에게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요."



<거미여인의 키스>로 유명한 마누엘 푸익의 소설입니다. 소개글을 읽어보니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실험적 소설'로 상당히 구미를 당기는 책이었습니다. 며칠간 교보를 뒤졌는데도 '미입고'만 뜨길래 알라딘에서 주문하고야 말았습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책이라는 점이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죠.

그리고 열심히 예비군 훈련장 뒷자리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거기서는 다 읽지 못했구요. -_-ㅋ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테지만 상반기에는 <자기 앞의 생>을 읽었네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이란 제목은... 흔치 않는 류의 소설 제목인 동시에 '이 편지는 영국... 에서 시작되어... '라고 하는 '행운의 편지'를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역자인 송병선 씨의 해설까지 통해 본다면 
이 제목은 [완벽한 독해에 결단코 이를 수 없는 독자에 대한 애도이자 작가인 마누엘 푸익의 목표]라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이 책은 오로지 ""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래리의 말, 라미레스의 말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다보면 종종 30대의 미국인 래리와 70대의 아르헨티나인 라미레스의 대화의 화자가 불분명해집니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독자가 혼란을 느낄때쯤 '래리가 이렇게 말했다' 등의 설명이 붙는 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라미레스의 병실 창문을 여는 장면 또한 대화 속 '추워졌다'는 말로 알 수 밖에 없습니다.

 
p146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그들에게 당신의 정치 성향을 말했을 거에요."
"그랬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지금은 1978년입니다. 메카시는 이미 의회를 떠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난 미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지요. 내 육체는 병들었지만 정신은 멀쩡해요."
"예,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게다가 요양원의 노인 라미레스와 역사를 전공했지만 노동운동을 하다 일용직처럼 사는 래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에 대한 애정도 신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세대를 초월하는 우정 따위는... 기대하면 안됩니다. 




어떤 부분은 실제 대화로 어떤 부분은 라미레스 영감의 꿈으로, 어떤 부분은 상상으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독자분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푸익의 의도라고 할 수 있겠죠.              






결국 래리와 라미레스의 관계는 불화에 따른 실망감을 던져주며, 라미레스가 겪은 과거 감옥생활의 속사정도 래리가 라미레스에게 이야기해준 부모, 헤어진 아내에 관한 기억의 진실도 안개속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소설 마지막 인권위원회와 래리, 기타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힌트로 던져지지만 이면의 이야기를 짚어내기엔 충분치 않습니다. 



그외 소설에서 푸익이 말해주고 싶던 70년대 미국사회와 격변기의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야기는 송병선씨의 작품해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읽는 내내 '나 이 책 읽고 있어요'라고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묘한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읽은 책만 올리자란 다짐으로 허벅지를 찌르다가 결국 다 읽고 올립니다 ㅎㅎ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 타 출판사에 비해 비싼데다 표지가 약해 포장할 수 밖에 없는 단점이 있지만서도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을 적자에도 불구하고 내놓는데에 호의적인 마음이 생기네요.



무엇보다 송병선 역자가 민음사에서 출판할 마르케스의<족장의 가을>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일어 번역의 김숙자님 만큼이나 신뢰가 가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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