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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20. 2016

열일곱

270  금방 자라고 금방 낫고 금방 기분이 좋아지던 시절



01 열일곱

내가 열일곱이던 시절에
나는 열일곱이던걸 알고 있었을까

내가 열일곱살이었다는 걸 
느끼면서 살고 있었을까

천체관측반, 영화음악, 피아노, 친구들,
그리고 공부 따위로 기억하는 시절이지만

열일곱이라는 생그럽고
그 숫자가 소수(prime number)라서
더 특별하고 유일했던 시절이란 걸
아마도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고1은 중학교 4학년같은 느낌이었고
고3 보다는 어려서 조금은 덜 공부해도 괜찮았다

적당한 어리광과 약간의 책임감을 오갔고
교복을 꾸몄지만 적당한 긴장이 있었고
금방 자라고 금방 낫고 금방 기분이 좋아지던 시절








02 다시 가을

추석 연휴의 말미
입술이 조금 까슬해지는 바람에
바세린 통을 찾아 바르고나니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는 가을을 다시 느꼈다

거리에 반팔만큼 긴팔차림의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들뜬다







03 

관심사가 달라지고 눈에서 안보이면
친구든 가족이든 멀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명절은 그런 당연한 사실을 
매년 재확인하는 일종의 게시판같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쉽지 않을리 없지만
그게 갈수록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데,
<은하철도 999>의 프로메슘에게 몸의 일부를
조금씩 바치고 그만큼 기계로 바꾸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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