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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22. 2016

『크눌프』 - 헤르만 헤세

271 - 2016년 118번째 책

 p31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았으며, 모든 소녀들과 여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매일매일을 일요일처럼 살았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를 뒤적이며 끝까지 다 읽었는지 아니면 중도에서 끊어냈는지는 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이었는데 <데미안>은 왜 그렇게 방학 때마다 추천되어 있었는지... 추천하는 교사들과 교육부마저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내지 못하고 꼭 두번 세번 읽기 위해 집에 그의 책을 모셔두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짧은 책이지만 
헤세의 깊은 지성과 넓고 따뜻한 마음이 이 책을 지탱해주고 있었고, 그래서 삶과 사람에 대한 여운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과장되거나 많은 그림을 그려내진 않지만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들과 
유리알이 구르듯이 맑게 흘러가는 
주인공 크눌프의 인생과 생각과 대화들.


p111
그는 침대 옆 탁자 서랍에 깔려 있던 깨끗한 종이 위에 몇 줄의 시를 적었다.

꽃들은 모두
안개 자욱해지면
시들어야 하는 운명,
인간 또한
죽어야만 하리니,
무덤 속에 눕게 되리.
인간 또한 꽃과 같아, 
봄이 오면
그들은 모두 다시 살아나리라,
그때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리,
또한 모든 것 용서 받으리.




크눌프는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열네 살의 나이에 라틴어 학교를 다니는 대신에 프란치스카를 위해 독일어 학교로 갔고 그녀에게 배신 당한 상처(크눌프는 뭔가 고장났다고 생각한)를 갖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노래와 휘파람과 춤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면서 살다가 마흔의 나이에 폐병을 안고 고향근처로 돌아옵니다. 


죽음의 앞에서 신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방랑이 안주하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일깨워주는 역할,
신 대신 어리석은 일을 함으로써 
조롱과 사랑을 신과 함께 받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의 방랑의 마지막 종착점인 '구원'에 이릅니다.(혹은 이르게 된 듯 합니다)


p134
"(상략)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그래요"
크눌프가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사실은 저도 항상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작품해설에서 헤세가 <크눌프>와 관련하여 지인에게 보낸 편지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삶, 또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삶과 다르게 사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참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p141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크눌프와 같이 재능 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 1954년 1월 에른스트 모르겐탈러에게 헤세가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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