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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24. 2016

『스파이』 - 파울로 코엘료

273, 2016년 119번째 책

p26
죄가 없다? 어쩌면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겁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도시에 첫발을 디딘 이후로 죄가 없던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정부 기밀을 원하는 자들을 조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저항할 수 없으리라 여겼지만 결국은 내가 조종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나의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주 그리고 다음주까지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가장 많이 비치되어 있을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쿠엘료의 신작 <스파이>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이중첩자로 알려졌고 
1차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총살 당한 
신비와 비운의 여인 '마타 하리'에 관한 소설입니다.

책에 들어가기 전 사실에 기초하여 썼다는 작가의 글을 볼 때, 이 소설이 <연금술사>의 그 신비와 경이로움에서는 약간 거리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p63
세찬 바람이 불면서 실크해트 하나가 날아와 정확히 내 다리 사이에 부딪힌 겁니다.
나는 조시믓럽게 모자를 저워들고 일어나 내 쪽으로 달려오는 남자에게 내밀었습니다.
"제 모자가 거기로 날아갔네요."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모자가 제 다리에 이끌렸나봐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마타 하리가 총살 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여학교와 네덜란드 장교의 부인을 거쳐 
프랑스의 무희로서 권력자와 재력가의 연인으로,
전쟁 중에는 스파이의 임무를 받고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오가는 그녀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스파이>는 읽기 전 기대와는 달리
마타 하리의 로맨스, 치정, 남자들보다는 
그녀의 이야기(말, 생각)에 집중합니다.

그녀가 총살 당할만한 첩자라기에는 
억울한 한 인간이었을 뿐임을,
스무살 어린 러시아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전쟁이라는 비이성 시대의 희생양이었음을 
말하는, 약간은 고발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와 작가의 말에서 마타 하리를 재판한 법관의 말과 기사, 첩보국 관리의 증언이 등장하며 그녀에게 가해진 불균형적인 시대의 관점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p216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확보한 증거는 고양잉 한 마리 벌줄 만큼도 되지 못한다."



치정이나 첩보같은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운 소설입니다.
스파이로 알려졌으나 
스파이라는 오명을 벗겨주려는,
그녀는 오락거리나 흥미거리가 아닌 한 여성이라는 주장같은 소설입니다. 


장르소설의 재미나
연래소설의 치정이나
<연금술사>의 신비로움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할 그런 담담한 소설이었습니다.



덧.
그나저나 코엘료 작품마다 번역가가 달라지는건 
그다지 보기좋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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