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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24. 2016

『리틀 라이프』 - 한야 야나기하라

274, 2016년 120번째 책

2권 p285
때로 윌럼은 주드가 섹스를 강제로 배우지 않고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도움 되는 생각이 아니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추석 연휴에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끝까지 도달하는데에는 결국 2주나 걸렸습니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주드의 가혹한 삶을 창작했음에도 작가인 야나기하라의 시선은 줄곧 따뜻합니다. '주드 세인트 프랜시스'는 하버드, 가족같은 친구들, 늦게 얻은 양부모, 연인과 수완좋은 변호사라는 사회적 성공을 얻었음에도 끝없이 자해와 자기혐오에 자기를 던집니다.



'그럼에도 상처받은 삶은 바뀌지 않는걸까?'



어린 시절 받은 폭력과 성적학대로 뭉개진 주드의 삶을 이해하는데는 이전에 읽은 요 네스뵈의 <바퀴벌레>의 한 문구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p328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거랑 같아요.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눈을 뜨고 나서 자신이 뱀파이어가 된 걸 깨닫지. 영원히 죽지 않고 피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리는 거요." - <바퀴벌레>



요 네스뵈는 해리 홀레의 목소리로 소아성애자를 뱀파이어에 비유합니다. 
혐오하는 존재에게 물려 자신도 똑같은 존재가 되어버려 똑같은 짓을 하는 것 말이죠. 




주드는 천주교 수사들, 루크 수사, 상담소의 카운슬러들, 트레일러 박사에게 물리고 찢겨 뱀파이어나 좀비같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을 물어 뜯는 대신에 자신을 물어뜯습니다. 

1권 p342
'행복해?' 한번은 주드에게 물은 적 있다.
'행복은 내 몫이 아닌 것 같아.' 주드는 마치 윌럼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권한 것처럼 한참 만에 말했다. '하지만 행복은 네 몫이야, 윌럼.'


<바퀴벌레>의 이 문구 덕에 읽는 내내 행복함에도 자기를 난도질하는 주드를 보면서 답답하거나 화가 나기보다는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화내고 물어뜯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화내고 자신을 물어뜯는 모습은 주드의 이름인 '세인트 프랜시스' 그러니까 '성 프란치스코'를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던 성인처럼 주드는 자기를 가둔 악의 먹이로, 하이에나들의 먹이로 자기를 줘버립니다. 


1권 p439
"넌 왠지 네가 매력 없고 사랑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작정하고 믿으려는 것 같아서, 어떤 경험들은 네 몫이 아니라고 결정해버린 것 같아서 가끔은 걱정이 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주드. 너랑 같이 있게 되는 사람은 정말 행운아일 거야." 한 블록을 더 걸은 후 윌럼이 말한다. 




이 책은 작년 미국 전미도서상과 영국 맨부커상 
양쪽 모두에서 최종후보작으로 올랐습니다. 

비록 수상하진 못했지만 
이 책이 가진 놀라운 힘은 현지 언론의 호평이 허풍이 아님을 넉넉히 보여주었습니다.


고통 뒤에 따르는 위로를 거부하는 놀라운 소설 - 뉴요커
구원의 서사를 거스르는 미국 문학의 역작 - 보그
어떠한 삶도 결코 작은 삶은 아니라는 것 -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답답한 한국의 언론은
동성애자간의 우정은 가능할까 - 중앙일보




주드는 스스로의 구원을 포기하고서라도 
자기를 뱀파이어나 좀비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하이에나들에게 몸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가인 야나기하라는 
구원을 거부할수 밖에 없는 주인공을 통해 
갈수록 성행하는 변태 범죄, 아동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굉장한 책이었습니다.







덧. 
서른, 마흔, 쉰의 주인공들이
계속 스무살의 말투를 사용하는 것은 이입하기 어려운 지점이었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 번역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것인지... 

이 점 하나가 딱 아쉽고 어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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