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감정의 공백기
이준익 감독, 송강호, 유아인, 김해숙, 문근영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고 이어 소지섭의 정조까지.
추석을 앞두고 개봉한 최고의 화제작 영화 《사도》를 봤습니다.
개봉하고 바로 본 영화의 '흥미'에 대한 감상을 먼저 적어보자면,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할까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굵직하고 무게감 있는 갈등.
유아인이 연기한 사도세자가 죽으면서 이 균형은 허물어지고 이후 등장하는 등극한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사도세자를 추모하는 듯한 말미의 장면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매우 빈양하게 느껴집니다.
영화의 절정은 영조가 뒤주 앞에서 읊게 되는 대사와 이후 영조의 행차길에 마주하는 영조의 기억 속의 사도세자. 그 사도세자를 바라보는 영조(송강호)의 묵직한 눈빛.
사도세자라는 가족사의 비극을 혜경궁 홍씨의 생일연에 나타나는 모자(정조, 홍씨)의 모습을 통해 상쇄하려는 듯했으나 영화 전체에서 보여주는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긴장, 비장미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사도세자의 묘에서 흐느끼는 정조(소지섭)와 노년의 홍씨로 분장한 문근영의 모습은 꽤나 어색합니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역의 전혜진 또한 위축된 캐릭터 연기는 훌륭하나 노인 분장이 어울리진 않습니다.
연출의 문제인지, 편집의 문제인지, 소지섭에 대한 제3의 손의 문제인지는 모를 말미의 어색함이란...
영화 내내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갈등에 젖은 관객의 마음을 날려주기에는 찜찜한 모양새입니다.
115분간의 영조와 사도세자, 송강호와 유아인의 연기는 영화를 추천할 정도로 훌륭했고 인원왕후인 김해숙과 정적을 만들어내는 문근영의 눈물연기는 송-유의 연기 사이에서도 빛이 납니다.
하지만 마지막 10분은... 아쉽기만 합니다.
그놈 목소리 같은 마무리는 피해야 하므로 분명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을 텐데 그게 많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영조-사도세자-정조의 어머니 모두 '중전'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영조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이었으며,
사도세자의 어머니는 후궁인 영빈,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미망인이었죠.
어머니에 대한 극한 출신 콤플렉스 및 경종 암살의혹에 숙종의 친자가 아니라는 의심까지, 영조의 삶 전반에는 스트레스가 가득했습니다. 다행히 그런 완벽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도 완벽히 미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삶이 괴팍한 성격과 수차례의 양위파동까지 일으키게 했죠.
그리고 이런 콤플렉스 때문에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완벽한 왕, 완벽한 인간, 완벽한 왕족'이라는 지나치고도 삐뚤어진 기대를 가진 게 아닌가 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극장에서 나오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60~`90년대 시대를 보낸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그 중간 어디쯤의 어른들이 지금 21C의 청년들에게 거는 기대가 그런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당신 세대들이 누릴 수 없었던 풍족한 시대를 보내는 만큼 더 높은 가치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 쉴 새 없이 달음질을 요구하면서도, 마치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들을 수 없었기에 듣기 원했던 '괜찮아'라는 말은 해주지 않는...
나는 너보다 더 힘든 시대를 더 절박하고 열심히 보냈는데,
왜 너는 나보다 더 좋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밖에 못해?
그리고 사도세자는 아버지가 못을 박은 뒤주에서 죽어버리고,
영조의 왕위는 세손인 정조에게 넘어갑니다.
물론 역사 자체에서 자신의 핏줄, 정통성의 마지막 희망.
어린 세손 정조를 살리기 위한 영조의 정치적 입장도 분명히 고려해야 할 겁니다. 역사의 진실은 영화에서처럼 둘만의 일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사도세자는 노회 한 아버지와 함께 노회 한 공신들에게 아버지만큼의 빚을 지진 않았죠. 이 '빚'은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에게도 적용됩니다. 근대화와 현대화의 역사를 무조건 단절시킬 순 없지만 21c의 20~30대는 앞선 세대가 강력하게 보필하는 일부 인물들, 계층들에게 그 세대만큼의 빚을 지진 않았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역사는 돌고,
방송가에서 말하기를 시대가 위기에 접하면 사극이 인기를 끈다고들 하더랍니다.
영조는 52년 재위 기간 동안 총 여덟 차례의 양위파동으로 사도세자와 신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리청정 전에는 사도세자가 4, 5, 9, 10, 14세로 5번,
대리청정 중에는 세 번을 또 그렇게 했습니다.
조선시대에 82세(1694~1776),
출신 콤플렉스가 있던 영조는 자신의 권위와 정통성을 그런 식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왕이 맞느냐?
그때마다 사도세자가 느꼈을 모질고 모진 부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어떠했을까.
이유도 모르고 코흘리개 어린 나이에 양위를 거두어 달라며 머리를 조아리고 죄송하다고 해야 했던 심정.
드라마 미생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서 죄송합니다.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비약적인 영조의 신분 변화
그리고 20c 기적처럼 순식간에 일어난 경제성장.
안정적인 감정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영조의 모습은 현대 발전기를 거치며 또한 위로받는 것을 사치로 여겼던 앞선 세대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안타까운 어른들의 초상이지만,
감정적 기대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80~`90년대 생들에게 앞선 세대가 겪었던 감정의 공백까지 물려받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영조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도세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단 말이냐."
사도세자 曰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떳떳하지 않으냐.
어린 정조 曰
공자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말단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라고. 소손은 그날 아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영조 曰
나는 자식을 죽인 임금으로 기억될 것이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버지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사도세자에게 영조는 아버지이자 그의 나라였고,
이 시대의 아들, 딸들의 나라는 아버지 세대의 나라였습니다.
오늘 J방송국의 뉴스에서 '헬조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시선을 읽어줬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민을 선택함으로써 나라를 버리는, 아니 지우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고 씁쓸하지만 뉴스를 보며 저도 그들과 같은 세대임을 다시 한번 자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