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의 사람

머리, 가슴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

by 뿡빵삥뽕




선배가 말했다.

"K는 정말 대단했지."




친구와 한 선배와 치킨집에 앉아 이미 떠나간 다른 선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나와 친구와 선배. 우연히 만난 선배이기에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썩 낯선 조합이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면이 있는 어느 누구와도 그렇듯이 옛날 이야기, 옛날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기억속에서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K라는 형.

중국에 경험삼아 갔다가 한국에 들어와 오랜만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 4기를 받았다. 얄궂게도 K라는 형은 내 여자동기와 연애를 하던 중 중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을 했다. 나이차도 꽤 나지만 워낙 전천후로 사람들과 교류하던 형이라 나도 좋아하고 잘 따랐던 그런 사람이었다. 동기와 잘못된 끝맺음으로 한동안 알음알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희망없는 말기암 진단은 말도 안되게 너무 가혹했다. K 형이 입원 진료를 받던 중에는 진주에서 복무중이라 병문안을 가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오전 근무를 보던 중 부고 문자를 받았다. 대대장님께 급하게 반가를 받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마음 속의 질문이 있었지만 병문안을 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조금은 갚아야 했다.



장례식장에는 K 형과 사귀었던 동기도 와 있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당일로 진주로 내려왔다.





"K는 친구지만 존경스러운 친구였어."


선배는 일장 k 형에 대한 추억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꿈 하나로 살아가던 사람이었고 중국에도 갔었고, 많은 사람들의 인정도 받았고 여자 집안에서 반대하던 결혼도 사랑으로 설득해서 성공했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지만 K 형은 잃은 사람도 많았고, 자신의 자유로움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기억하진 못했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들에게 인사한번 하지 않았고. K 형이 돈에 자유로웠다고 말하지만 2년 정도 연락 끊고 살던 친구에게 무턱대고 돈 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가 면박 당했던 일도 있었지. 그 친구는 자기를 돈 필요하면 연락하는 사람으로 대했다고 실망했고.'



K 형이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손해를 주지 않았지만, 그 날 그 자리에서 K 형에 대해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선배의 말에 내 머리는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선배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K 형에 대한 다른 내용들을 이야기할 자신은 없었다.



선배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해당되었으니까.







대학교 다닐 때 내가 참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사실 '좋아하다'라는 표현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한다고 쓰고싶지만 그렇다기에는 내 모든 것을 던지지는 못했다. 10년이 지났다.


10년이 지났지만 손을 잡았던 것도, 손등에 떨어지던 눈물도 기억이 난다. 노래는 잘 불렀지만 신기하게도 박수치는데는 박치였다. 좋아하던 노래도 생각이 나고 함께 피아노 치면서 불렀던 노래도 생각이 난다. 나는 나이답지 않게 어리광 피우기도 했고, 잘 받아주기도 했다.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많은 나의 하소연도 잘 들어줬다. 글씨는 훌륭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줄때는 늘 작은 편지라도 써서줬다.



그리고 K라는 형처럼 먼저 세상을 떠났다. K형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었지만 더 일찍 헤어졌다.



K 형처럼 병이라도 걸렸더라면 어느 날 갑자기 부고문자가 오더라도 준비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20대는 지금 생각해도 이별을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나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슬퍼하는 나를 보여주면 어색할 것 같았다. 그래서일지 몰라도 참 오래갔다. 장교로 복무했지만 외롭고 힘들 때 침대에서 늘 그 사람이 생각났다. 너무 보고 싶어서 잠을 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혼자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 해도 어느 순간 멈춰져 있는 그 사람의 시간을 나 혼자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7, 8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그랬다.







꽤 늦은 나이게 장교로 복무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병사로 들어왔다. 전역할 때 쯤엔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다시 보고싶기도 하고, 손도 다시 잡아보고 싶어. 나한텐 정말 잘 해주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거 같아."


"계장님... 그 분이 정말 좋은 분이었던건 맞는 것 같은데..."


"응?"


"옛날 기억은, 특히 사람에 대한 기억은 미화 되는 것 같아요."


"..."


"지나간 사람은 어쩔 수 없잖아요. 너무 좋은 것만 계속 남겨두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요? 계장님은 어느 지점의 물길을 막아논 것 같아요."





난 그 형의 이야기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연락하지 않았던 적도 줄곧 약속에 늦었던 그런 기억들은 내 머리속에서 꺼내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이 날 화나게 했던것도 때론 더 오래 이야기 하고 싶던 나를 무안하게 했던 것도.








K 형이 다시 돌아와서 선배의 기억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더 실망시킬 수도, 나를 더 사랑해 줄 수도 없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드라마도 영화도 많이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의 행복한 삶으로 끝났던 기억은 별로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남겨두는 것의 미덕만 남아있었다.




기억속에 남은 사람이 미화되는 건 아닌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신기한 거름망이 생겨서 좋지 않은 기억은 걸러내고 좋은 기억만 남는 것 같다.




K 형을 그리워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나를 봤던것 같다.



지나가야 한다는 그 선생님 형의 말은 반박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나가야 하는데도 내 책상앞에는 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고 지갑에는 그 사람의 작은 사진이 들어있다.



기억에만 남아있는데 나마저 흔적을 지워버리면 그 사람이 너무 슬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