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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r 25. 2018

38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문학동네

⭐⭐⭐⭐

롤리타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3.03.04.



머리말에서부터 독자를 희롱한다. 외설적인 단어가 없다고 못을 박는다.

p11
사실 이 작품을 통틀어 외설적인 단어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p176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

p212
그 점잖고 몽롱한 공간은 범죄의 온상이 아니라 시인의 영토였다.

p258
그녀의 아름다운 황갈색 육체와 갓난아기 살처럼 옴폭 접힌 뱃살에 수은처럼 고인 물방울을 꿈꾸며 몸부림을 쳤으리라

p334
롤리타. 식사도 신경 좀 써야겠더라. 허벅지 둘레는 17.5인치를 넘으면 안된다고 했잖니.
ㆍ 
p379
내 아이도 그가 훔쳐본다는 걸 알아채고는 그 음란한 시선을 즐기면서 짐짓 더 신나게 뛰논다는 것도 알았다. 천박하고 사랑스러운 년.

소아성애자의 판타지에 관한 소설이지만 나보코프는 주인공이 3인칭 관점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시점을 더해서 험버트가 외부로부터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을 전달한다(사실 미친 얘기니까)

이 책을 아름다우면서 추하고 음란하면서도 순수하다고 얘기하는데, 작가는 최고급 비단으로 포장한 내용물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직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겠다는 혹평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굳이 왜 아름다움을 찾는지 모르겠으나 더럽고 하찮은데서 성스러움을 발견하고 가장 부유하고 높은 성에서 가장 추악한 것을 발견하는 일이 문학에선 어렵지도 않거니와 극한의 언어유희 속에서 가장 불편한 시선을 느끼는 것도 그런 아이러니의 한가지 일 수도...

소아성애라는 범죄적 소재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한 욕망의 줄다리기는 독서의 긴장을 극대화 시키기도 한다.

읽는 내내 나 자신을 검열하며 느끼는 내부의 긴장감, 이 책을 읽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괜히 의식하게 되는 외부의 긴장감.

이런 안팎의 긴장감이 마치 험버트가 오가는 1, 3인칭 관점을 실감나게 해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떠오른 독특한 감상 하나를 더하자면... 50, 60년대 북한의 작가가 남한으로 귀화해서 요런 소설을 발표하면 바로 빨갱이로 몰릴텐데, 아마 이런 식일게다.

'더럽고 추한 변태 빨갱이 간첩이 귀화한 척 음란하고 패륜적인 포르노로 동방예의지국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간악한 적화 공작' 그리고 사형.

더불어 롤리타 뿐 아니라 험버트를 다양한 호칭(이름, 성, 애칭, 더 친근한 애칭, 개인적 애칭)으로 부르는 것은 러시아 소설의 특징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영어 소설인 동시에 러시아 소설로 보이는 지점이었는데, 모텔을 방황하는 두 사람은 전 세계를 방황한, 심지어 이 소설의 성공 후엔 미국을 떠났던 나보코프의 자전적 여정을 보는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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