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남일 뿐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없기에

by 진서

남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할수록

대인 관계에 불안감이 높다고 한다.

불안해서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통제가 안된다. 그래서 더 불안해진다. 그럴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남은, 남일 뿐이다. 나와는 다른 객체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어린이도, 성인이 된 나도,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들거나 안다는 듯이 행동하면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 의지가 있고 자유 권리가 있다. 부모조차도 자식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통제의 범위를 좁혀 나가야 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통제의 범위를 조절하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불편함만 남긴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선택권을 주게 되면 방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보다 더 통제하려고 하면 반항심을 갖게 되거나 반대로 자립하기 어려워진다. 나이도 고려해야 하고 아이의 성향이나 상황도 함께 보아야 한다. 부모는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하나 부모는 없지만 노력하는 부모는 있다. 자식도 결국은 안다. 나를 위해 노력하는 부모를. 그래서 부족하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결국 부모의 노력이 우선이다. 부모가 전부이다.



남과 나는 다른데, 자꾸 욕심이 난다. 친구, 지인, 직장동료, 사촌, 아는 언니, 아는 동생. 친할수록 첨언하고 싶어 진다. 그게 상대를 위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모두 알다시피, 남이 조언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모든 답은 다 나에게 있다. 굳이 한마디 하고 싶다면 응원만 해주기를. 나 또한 가까운 지인에게 중요한 순간에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가 관계가 깨질 뻔한 적이 있었다. 비록 깨지진 않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진심으로 걱정했지만 받아드려 주지 않았던 서운함만, 지인에게는 믿어주지 않았던 섭섭함만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 둘 중, 어느 누구의 말이 옳다는 결론과 마주하더라도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선택은 선택을 하는 사람의 몫이다. 결과도 선택한 사람의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결국 결혼했다. 영영 이별했지만. 둘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된 게 아닌가.



약간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이성이 쉽게 찾아온다. 하지만 부모는 다르다. 자식이 나 같다. 부모가 자식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펼쳐 보려고도 한다. 부모가 살아온 인생에서 아쉬웠던 걸음, 후회했던 길, 바라왔던 꿈을 모두 이루게 해주고 싶어 한다. 그렇게 까지 투영하지 않더라도 매번 하는 선택에 최선을 다해주고 싶다.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자식도 어쩔 수 없이 남이다. 내 인생이 아니라 아이 인생이다. 인정해줘야 하는데 정말 어렵다.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해주고 싶다.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그 마음이 진해질수록 집착임을 알아채고 힘을 빼보는 연습을 해보자. 그 누구도 나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나는 오직 나 하나다. 남에게 쏟던 에너지의 절반만 거둬서,

나에게 흘려보내기로 한다.

남이 소중한 것보다 나 자신이 더 소중하다. 내가 소중해야 남도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