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가기

피하지 않고 때론 피하면서

by 진서

처음 개인 상담을 시작하고 2회 차에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나에게 귀 기울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졸린지, 배가 고픈지, 기분은 어떤지...

이야기를 듣고는 당황스럽고 서글펐다.

나의 상태를 예민하게 살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되어서가 아니었다.

사람마다 컨디션을 회복하는 방법이 다른데 나는 잠으로 회복했다.

이해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와서 잠을 못 이기는 게으른 나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잠을 의식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낮잠은 아무도 없는 시간에 몰래 잤다.



임신한 후에 잠이 쏟아질 때도 짜증이 났다.

나도 모르게 늦잠을 자거나 낮잠을 자고 나면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남편이 잠을 오래 자도 화를 냈다.

그런데 남편은 아직까지도 내가 잠을 잘 때는 깨우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차에서 잠이 들었는데 남편과 아이는 내가 깰 때까지 차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낯설어서 깜짝 놀랐다.

낯설었지만 그 모습이 오랫동안 남아 행복하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자.

너무 진부하고 이해는 가능한데 반대로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엇을 하든 몸이 힘들면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마음이 힘들어도 하지 않는다.

내 상황에 무리가 아니라면 작은 것이라도 행복한 것을 죄책감을 갖지 않고 한다.

가족이라도 나를 힘들게 할 수는 없다.

부모로서의 인내심은 갖는다.

하지만 부모 이상의 것, 자식 이상의 것은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지도 않는다.




회피하는 게 편한 사람들은 반대로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안감이나 공포에 짓눌려 그 감정과 상대하여 싸우는 게 불가능하기에 나오는 방어 기제 아닐까.

피하면 편하다. 그 순간만큼은.

그런데 피하고, 다시 피하고, 또 피하다 보면,

피하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에 온다.

더 공포스럽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피하는 건 나쁘기만 한 게 아니다.

세상 모든 걸 해결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맞서고,

감당할 수 없는 건 잠시 피해 간다.

그것도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비겁하지만 그게 내가 사는 방법이라면

피해 주지 않을 정도라면

괜찮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