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좋아하고 싶어서 참았던 말

by 진서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거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나를 더 좋아할 만한 선택을 하게 된다.

또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만한 그런 선택.

내가 바라는 것은 결국 나를 좋아하는 것이기에.

내 선택으로 인해 상대가 변하면 나는 다시 내 탓을 한다.

그때, 그 선택은 잘못된 거야.

너는 역시 사랑받을 자격이 없구나.

그런 내가 반복이 되다 보면

무색무취의 매력이 없는 투명 인간이 된 것만 같다.

날 좋아해 달라고 들이밀 곳이 없다.

솔직히 나도, 그런 내가 재미없었다.




어떤 관계에서든

더 사랑하고 더 필요한 쪽이 지는 것이다.

언제나 내가 갑이 되기는 어렵겠지.

갑과 을은 서류상에서 구분 지을 수 있지만,

실제 사는 세상에서는 갑과 을이라는 관계는

얽혀 있다.

갑처럼 보여도 을인 경우도 있고,

을처럼 보여도 갑인 경우도 있다.

갑이었는데 을이 되기도 하고,

을이었는데 갑이 되기도 한다.

상황마다 갑과 을이 바뀌기도 한다.

갑도, 을도, 늘, 고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갑일지라도 정중하게 살아야 하고

을일지라도 꼬리를 내릴 필요는 없다.

갑의 권력은 무한하지 않다. 정말, 언제나 그렇다.




내게 대표적인 갑은 나의 아이이다.

특히나 신생아 때는 어찌나 갑질이 심하던지

밤낮없이 잠까지 포기하며 수발을 들었다.

내 심장도 내어줄 수 있는 아이이기에

그 사랑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나는

을인 엄마다.

을이어도, 평생을이어도 행복하다.

그런데 아이는 본인이 을이라고 한다.

내 표정을 보고 내가 기분이

조금 상했는지, 풀렸는지, 좋은 지, 기가 막히게 안다.

“나는 엄마를 잘 아는데, 엄마는 날 잘 몰라! 서운해!”

그렇다. 어떤 관계도 갑과 을은 늘 변한다.

서로가 다르게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본인을 을로 인식한다.




누구나 나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해 주고 이해해 주고 맞춰주려고 하면

세상에 어려움은 없겠다.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는 얘기도 아무도 안 하겠다!

갑처럼 당당한 마음으로,

을의 배려심으로 무장해 본다.




을의 자세를 벗어나기 위해 내가 했던 것은

거절해 보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선에서

가벼운 거절을 하나씩 해봤다.

굳이 ‘거절’이란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피하거나,

답을 늦추는 것도 거절이었다.

나의 경계에 대해 설명을 하면

그게 거절이 되기도 했다.

거절이 기본값이 되어서 거절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정말 하기 어려운 것, 싫은 것을 설명해서

내가 편한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을 상대가 수용하지 못하면 기다려주거나

우리 사이의 틈을 벌려 나가면 그만이다.

내가 편해야 상대도 편하다.

내가 거절해야 상대도 거절한다.

거절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서로가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관계는 지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