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숟가락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by 달리는 느림보

10, 9, 8,......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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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제일 많을 때는 10명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내외, 조카 2명, 둘째 누나, 셋째 누나, 막내누나 그리고 나


큰 밥상이 두 개가 필요했다.


큰 밥상을 거실에 펴고 수저와 밥과 반찬을 부지런히 날라야 밥상이 완성됐다.


아버지는 일가를 이루셨다.


그러나 머지않아


큰누나 내외는 조카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둘째 누나는 지방으로 취직해서 떠났다가 큰누나를 따라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셋째 누나도 지방으로 취직해서 나갔다.


넷째 누나는 일본에서 살고 싶어 하는 남자를 만나 일본으로 갔다.


엄마는 셋째 누나의 아이들을 돌봐준다며 누나집으로 들어갔다.


밥상은 두 개에서 한 개로, 한 개에서 더 작은 밥상으로, 그리고 부엌방의 식탁으로 점점 규모가 작아졌다.


숟가락 숫자는 10에서부터 꾸준히 줄어들어 2가 되었다.


아버지와 나


나는 아버지와 가장 오래 살았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며 그 집을 떠난 뒤로 식탁 위에 놓이는 숟가락 숫자는 1이 되었다.


자식이 5명이니 각자 짝꿍을 만나면 10명, 자식들이 아이를 2명씩만 낳아도 또 10명......


아버지는 최대 22명쯤 되는 대가족이 모여 부모님의 생일파티도 하고 명절도 보내기를 상상하셨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셋째 누나 가족과 내 가족이 모이면 그래도 10명은 되었으니 아주 적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친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누나들이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할 때마다 무척 서운해하셨다.


성인인 자녀들이 자기 길을 찾아서 떠나는 것을 막을 수야 없지만, 아버지가 생각한 가족의 미래는 아니었다.


내가 떠난 뒤에 아버지는 혼자가 되었다.


오래된 집이라 단열은 오래전에 포기한 집에서 가스를 아낀다며 보일러도 틀지 않고 전기장판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얼굴만 살짝 내놓고 겨울을 났다.


여름엔 멀리 있는 지하철역으로 가서 한낮의 폭염을 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무척 활동적인 분이시라 하루를 무료하게 움직임 없이 보내지는 않았다.


재래시장에 가서 어머니 심부름도 하고, 지하철역도 가고, 산책도 하고 자전거로 한참을 가야 하는 당신의 형제집에도 종종 들르셨다.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더 활동적이셨다.


그래도 밤이 되면 언제나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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