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대학교 2학년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동아리 운영진이 대부분 2학년이라 나는 운영진은 아니었지만 친구들 회의자리에 제법 끼고 있었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작년에 갔던 산 아래 민박집도 좋았는데......”
“야 그러지 말고 올해는 바다로 갈까?”
“바다 어디?”
한참을 우리들끼리 떠들다 바다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아버지가 계시는 섬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당시 섬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벌이는 크지 않아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섬으로 가라고 하니 꼼짝없이 섬에서 근무하고 있던 터였다.
“우리 아버지가 섬에 계시는데 거기 해수욕장 있는데......”
생각의 흐름대로 내뱉은 나의 말은 곧 책임이 되어 돌아왔다.
“오예~ 그럼 올해는 림보 아버지 계시는 섬으로 가자. 야 림보야 도와줄 수 있지?”
막상 말을 뱉고 나니 일주일에 한마디도 안 하는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부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큰 벽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알았어 해 보자. “
2층 TV와 몽둥이 사건 이후로 나는 아버지와 급격하게 멀어졌다. 서로 경계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번 여름방학에 학교 동아리 친구랑 후배들이 수련회 갈 곳을 찾고 있는데요......”
“오~ 여기 해수욕장 좋은 곳이 있는데 여기로 올래?”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것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인 아들이 갑자기 전화해서 수련회 운운 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대뜸 그곳으로 오라고 제안을 하셨다.
“몇 명쯤 되고 날짜시간만 알려주면 돼.”
”30명쯤, 0월 0일 00시 배를 타고 들어갈 거예요 “
나는 무거운 전화를 끊자마자 부리나케 친구들에게 달려가서 자랑했다.
“야야 됐다 가자~ 오래.”
“오케이~ 잘했어~ ”
배를 타고 우리는 섬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16인승 승합차로 선착장에서 중간집결지까지 왕복 2번으로 학생들을 옮겼고, 중간집결지에서 짐을 챙겨서 해수욕장으로 또 왕복 2번으로 옮겼다.
8월 말이라 해수욕장은 이미 폐장한 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50명도 거뜬히 들어갈 거대한 막사하나를 동네 이장님께 부탁해서 빌렸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뛰쳐나가서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 모래사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 나무그늘 아래서 보자기를 깔고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텅 빈 해수욕장은 우리들 세상이었다.
물끄러미 막사를 올려다보니 아버지는 부지런히 뭔가를 옮기고 있었다.
밥이며 국이며 김치며.... 아들 친구들 밥이라도 챙겨주려고 부지런히 음식을 해다 날랐다.
저녁어스름에는 또 오시더니 승합차에서 맥주를 박스로 내려놓고 가셨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들은 뭘 먹을까 어슬렁 거리며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막사 앞에는 카레가 솥째로 놓여있었다. 아침 새벽에 아버지가 왔다 가셨던 것이다.
오후 배시간에 맞춰 아버지는 또 16인승 승합차로 부지런히 우리를 날랐다. 왕복 2번
선착장에서 친구들 후배들은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하고 섬을 떠났다.
육지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저마다 다들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
나는 출렁거리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무뚝뚝한 나에게 왜 저리도 애를 쓰셨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뭐 하나 한 것도 없으면서 왜 이리도 염치없는 짓을 했을까?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아버지에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놀러 가자고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