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난 자리

by 달리는 느림보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1996년 즈음

큰누나 내외와 조카 두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큰누나 내외의 한 집 살림이 온전히 2층집 큰방과 작은 방을 점령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올 리 만무지만 아버지는 그 짐들을 다 남겨놓았다.


200x 년

영주권을 얻은 큰누나의 초청으로 둘째 누나도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전부터도 영어를 끊임없이 공부하더니 마음에 어떤 열망이 있었나 보다. 지방에서 생활하며 생긴 짐을 2층 작은방에 얹어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2층 작은 방은 이제 짐으로 가득 차서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 번은 2층 작은 방에 가서 쓸만한 게 있나 살펴본 적이 있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 한 질과 읽을만한 책 네댓 권 정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샛노랗게 변해서 펼치면 바스러질 것 같은 책들과 세로로 쓰여 있는 세계문학전집, 누나들이 대학시절 사용했을법한 인쇄물, 피아노 악보, 통기타 노래책......


200x 년

셋째 누나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다. 엄마와 안방을 썼던 터라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고, 본인의 짐을 제일 깔끔하게 챙겨간 식구였다.


200x 년

넷째 누나가 짝꿍을 만나 떠났다. 넷째 매형은 일본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누나도 일본행을 결심했다. 아버지는 막내누나의 일본행을 반대하셨다.


한국에서도 많은 기회가 있는데 왜 일본이냐. 일본에 간다고 한들 생계유지가 되겠느냐, 반대할 이유는 많았지만 누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결국 누나는 일본으로 갔고 2층 안방은 다시 짐이 늘었다. 그곳도 발 디딜 틈 없는 그냥 창고가 되었다.


2009년

내가 결혼하게 됐다. 1층 작은 방을 쓰던 나는 그대로 몸만 빠져나갔다. 이제 2층을 넘어서 1층까지 주인 없는 짐으로 가득 찼다.


주인 없는 짐을 정리하자고 여러 번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아버지는 누나들이 언제 자기 물건을 찾을지도 모른다며 손도 못 대게 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렇다.


누나들이 종종 한국에 올일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살고 있는 2층 집은 방 1칸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생활공간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화장실도 재래식이라 한국에서의 체류지로 부적절했다.


누나들은 엄마가 살고 있는 셋째 누나집을 선택했다.

그러니 2층집에는 올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나마 식구들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짐을 찾으러 들러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을 찾아주기를.....


그마저도 없으면 진짜로 올 이유가 전혀 없으니.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한 번도 찾지 않는 물건은 더 이상 주인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그 물건들을 찾으러 2층집에 들른 가족은 없었다.


결국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들은 (내 물건까지 포함해서) 언젠가 몽땅 버려야 할 것들 뿐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