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나는 2009년 3월에 결혼했고 그해 추석에 처음으로 양가 어른을 찾아뵙는 결혼한 사람으로서 첫 연례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내가 살던 지역이 본가와 같은 지역이었으니 자연스레 부모님을 먼저 방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처갓집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항상 명절이면 하던 대로 아버지를 모시고 산에도 다녀오고 친척집 인사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차례도 지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일어났다.
아버지는 나를 따라오시더니 조용히 내 손에 봉투를 쥐어주셨다.
두툼한 돈뭉치였다.
나는 이제 성인으로 결혼한 아들로 -백수긴 하지만- 없는 돈을 모아서 양가 어른께 드릴 용돈봉투를 마련해 놓은 터였고 부모님께는 이미 드린 상황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버지 이게 뭐예요?"
"돈을 못 번다고 주눅 들지 말고 장인영감 용돈으로 드려라."
아버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버지가 내손에 몰래 쥐어준 꾸깃꾸깃 해진 하얀 봉투 안에는 장인영감에게 드리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큰처남을 만나거든 술이라도 한잔 사주고 작은 처남을 만나거든 용돈이라도 쥐어주라는
그러니까 처갓집에 가서 돈이 없어서 기를 못 펴는 일은 없게 하라는 아버지의 마음인 게다.
아 나는 언제쯤 아버지 앞에서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을까?
대학도 졸업하고 기나긴 백수생활을 지나 결혼도 했건만 아직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
2013년 나는 드디어 취직을 했다.
취직을 했지만 아이도 태어났다.
벌이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 아이를 갖게 되니 다시 형편은 그만그만이었다.
여전히 명절에는 아버지가 몰래 따라 나와 내손에 어김없이 봉투를 쥐어주셨고
나는 언제나 명절에 내 손에 쥐어질 봉투를 믿고 어머니에게도, 처갓집에도 명절 용돈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직장을 구하고 5년쯤 뒤였을까?
그러니까 아들이 6살이 됐을 때쯤, 내가 마흔이 됐을 때쯤 아버지는 나에게 명절용돈 주는 것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처갓집에 가서 없는 티 내지 말고 장인장모님과 처남들에게 베풀라는 잔소리도 그만두셨다.
항상 받던 봉투를, 언제쯤이면 이걸 안 받게 될까 생각하던 봉투를 안 받게 되니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들면서도, 이제 나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내 생각을 얼마나 하신 걸까? 얼마나 하셨길래 처갓집에 가서 용돈을 넉넉하게 못 드리는 상상, 처남들에게 술 한잔 못 사주고 멋쩍게 웃는 상상, 행여라도 장인장모님에게 홀대받을지도 모른다는 - 그런 일은 없었지만 - 상상 그런 상상들을 하신 걸까?
나는 한없는 사랑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명절이 되면 아버지가 더욱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