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톺아보기(5)
≪동트는 강원≫(통권 149호)을 넘기다 보니 ‘강원 관광 챌린지 미션! 스탬프 투어’라는 광고가 나온다. 누구보다 우리말 쓰기에 엄격해야 할 공공기관에서 오히려 배달말을 얕잡아 보고 <국어기본법>을 아주 우습게 안다. 우리말은 영어보다 말맛이 떨어지고 촌스럽다 여기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뭐, 강원특별자치도청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염치고 품위고 내팽개치고 남의 나라 말을 끌어다 쓰는 얼빠진 짓거리야 비단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 ‘챌린지, 미션, 스탬프 투어, 스페셜 챌린지’ 같은 말을 나이 든 어르신이나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잘 알다시피 ‘챌린지’는 영어다. ‘도전’이란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챌린지’는 ‘도전’이란 뜻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어떤 목적을 이룰 요량으로 펼치는 행사나 공모전, 운동, 대회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쓴다.
찾아보니 ‘챌린지’는 1992년 3월 9일치 ≪매일경제≫ 23면 <포철 제선부 「챌린지…」 운동>에서 처음 보인다.
(포항제철소 제선부는 수출가격 하락과 제조경비상승으로 인한 경영여건악화를 타개키 위해 「챌린지1000」 운동을 추진。이 운동은 용선 1통 생산하는데 필요한 제조원가중 1천원을 절감하자는 취지로 시행중인데 연간 1백억원 이상의 절감효과를 기대。)
「챌린지1000」 운동은 일본식 영어를 따라쓴 말로 보인다. 가랑비에 옷 젖듯 처음에 조금 어색해도 잘나가는 기업이나 정부에서 자꾸 끌어다 쓰니까 그 말이 그 뜻인가 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내남없이 쓰는 말인데 지금 와서 싹 바꿀 수는 없고, 쓰던 대로 쓰자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다. 옳은 말이다. 어떤 사전도 낱말 뜻을 온전히 붙잡이 못한다. 사전은 늘 세상 말을 한걸음 뒤에서 쫓아간다. 사전에 없다고 해서 그른 말은 아니다. 말의 주인은 사전이 아니라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 ‘챌린지’엔 ‘매우 큰 어려움’이나 ‘곤경’이나 ‘이의 제기’라는 뜻이지, 좋은 뜻으로는 쓰지 않는다. 영어권에서 ‘챌린지’라는 말을 쓸 때는 ‘이미 실패를 예상하거나 성공하기 매우 어려운 일’에 도전한다는 뜻을 품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챌린지’는 라틴어 ‘칼루미아(calumnia)’에서 왔다. 누군가의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요량으로 거짓 고발하고 근거 없이 헐뜯고 속임수로 사실을 비틀어 남을 해롭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은 ‘칼루미오(calumnior, 후기 라틴어)’와 ‘셀로지에(chalongier, 옛 프랑스어)’와 ‘챌렌겐(chalengen, 중세 영어)’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들 말에는 책략, 속임수, 거짓 고발, 모욕, 반론, 논쟁처럼 좋지 않은 뜻이 담겼지 꿈이나 목표를 향해 도전한다는 좋은 뜻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챌린지’란 말을 어떻게 쓰는가. 사전에는 아예 없는 뜻으로 더 자주 쓴다. 어떤 일을 함께 해보겠다는 뜻을 내보이거나 힘을 보태는 일, 함께하는 일, 또 개인이나 공동체의 묵은 버릇이나 생각을 바로잡는 행사나 운동, 공모전, 대회라는 뜻으로 쓴다. 이런 쓰임새는 일본식 영어에서 말미암았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에서 보듯, 영어에서도 드물게 쓰긴 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에 ‘도전’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지 애초 ‘운동’이나 ‘캠페인’의 뜻은 아니다.
다른 뜻이긴 한데, 주먹을 불끈 쥐면서 “도전!” 하고 외치는 짓거리도 일본 방송에서 하던 짓거리를 따라하면서 퍼진 말이다. 요즘엔 아이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말을 쓴다. 교실에서 교사가 칠판에 써준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서는 아이, 뜀틀 앞에 선 아이, 줄넘기 이단뛰기를 해보겠다는 아이 입에서 ‘도전’이란 말이 주저없이 튀어나온다. 이들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뒤쳐야 할까. “I'll give it a challenge!”가 아니라 “I'll give it a try!”라고 해야 한다. ‘챌린지’가 아니라 ‘트라이’가 더 알맞은 말이다.
※ ‘챌린지’라는 말을 다룬 브런치 글: '챌린지'라는 말
※ <국어기본법> 제14조 제①항 공공기관등은 공문서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 날짜 뒤에 쓰는 온점(.)은 각각 년, 월, 일을 뜻하는 기호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빼서는 안 되며, 날짜는 ‘2025. 6. 20.’처럼 써야지 보기좋게 할 요량으로 ‘6월’을 ‘06.’처럼 써서 ‘2025.06.20.’ 같이 쓰지 말아야 한다.
※ ≪캠브리지영영사전≫에서 ‘챌린지’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뜻을 풀어놨다.
이름씨 1. something difficult that tests your ability.(한 사람의 능력을 시험하는 어려운 일.) 2. an invitation to compete in a game or a fight.(게임이나 싸움에 참가하도록 초대하는 일.)
움직씨 1. to tell someone you do not accept their rules or you think they are wrong.(누군가에게 규칙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잘못이라고 말하는 일.(이의 제기)) 2. to ask someone to compete in a game or fight.(누군가에게 게임이나 싸움에 참가하도록 요청하는 일.)
#공공언어 #챌린지 #도전 #함께하기 #공모 #행사 #calumnia #challenge #일본식 영어 #재플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