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드물고 '귀한' 병이라니요?

공공언어 톺아보기(3)

by 이무완

A씨(26)는 7세 때 희귀질환인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처음 진단 받았다. 신장기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증상 탓에 12세 때 신장 이식을 받았다. 하지만 질환이 재발해 신장이 다시 나빠졌고, 아버지로부터 받기로 한 두 번째 신장 이식마저 도저히 수술을 받을 수 없는 몸 상태라 결국 무산됐다.(≪경향신문≫ 2025. 6. 20. 8면, <희귀질환자들 고통 키우는 ‘바늘구멍’ 건보 기준> 일부)


아흔아홉 사람에게는 입에 붙은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한 사람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아픈 말이 ‘희귀질환’이다. ‘희귀’는 드물 희(稀), 귀할 귀(貴) 자를 쓴다. 곧이곧대로 뒤치면 드물어서 귀하다는 말이다. 얻기가 아주 힘들 만큼 드물어 매우 소중하다는 말로도 쓴다. 말뜻에 기대어 보면 ‘희귀질환’은 어처구니 없는, 몹쓸 말이다. 아주 드물어서 매우 소중하고 귀한 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희귀병(稀貴病) 걸리는 사람이 매우 드문 병.

희귀본(稀貴本)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책.

희귀종(稀貴種)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물건이나 품종.

희귀품(稀貴品) 드물어서 특이하거나 매우 귀한 물품.


똑같은 한자를 썼지만‘희귀병’만 ‘귀하다’는 뜻은 쏙 빼고 ‘매우 드문 병’으로 뜻매김해놓았다. 어린 아이 백만 명 가운데 서너 명이 걸릴 정도라니 매우 드문 병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A씨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희귀질환’이나 ‘희귀병’, '희귀질환자'라는 말이 A씨 귀에는 과연 어떻게 들릴까. 말은 때로 칼이 된다. 그래서 내 입에 붙은 말을 살피고 낯설게 보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민주사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공감하려는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했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늘 한 발자국씩 늦지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희소병’이나 ‘희소질환’으로 바꾸려는 실천을 일으켜야 할 때다. 희소금속, 희소성, 희소원소 같은 말에서 보듯 ‘희소’는 ‘매우 드물고 적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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