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말고 우렁거지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2) 우렁거지, 우렁곶

by 이무완

옛사람 마음을 품은 땅이름

땅이름은 그 땅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 마음과 얼이 담기게 마련이다. 마구할미발자구, 도둑놈숨아난골, 베르기코셍이, 우렁거지 같은 땅이름을 보면 아기자기한 이야기 한 자리씩 있을 듯 하다. 삶과 동떨어진 껍데기말 아니라 삶에서 길어낸 이름들이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동해시에 있는 ‘우렁거지’의 말밑을 톺아보려고 한다.

우렁거지를 ‘선창깐이 골짜기의 산굽이’(동해시 지명지, 2017, 164쪽)로만 아주 짤막하게 써놓아서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렇긴 해도 ‘우렁+거지’와 같은 짜임으로 쪼개어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동해-신흥-우렁거지&선창깐.jpg 우렁거지 (지도 출처: 국토정보지리원 1:25000지도(2023))

무논 사는 우렁? 엉엉 울어 울엉?

먼저 앞엣말 ‘우렁’은 무논이나 웅덩이에 사는 ‘우렁이’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우렁산, 우렁소, 우렁골, 우렁논, 우렁바우, 우렁고개에서 보듯 ‘우렁이’가 들어간 땅이름이 적잖다. 우렁이를 닮아서, 우렁이가 많아서, 우렁이가 목을 길게 빼고 기는 모습과 닮아서 우렁이 껍대기처럼 둥글다 해서 붙은 이름들이라고 한다. 다른 해석으로는 ‘우렁’은 ‘울+엉’으로 보고, ‘우렁바위’(울엉바위), 산이 운다고 해서 ‘우렁산’(울엉산)이라고 한다. 서울 구척2동 계린근린공원에 있는 우렁바위가 있다. “바위 무더기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울음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려 ‘우렁바위’, 또는 ‘명암(鳴巖)’이라 하였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고 전한다. 설악산 울산바위도 큰비가 내리고 천둥까지 쿵쿵 울릴 때는 산이 우는 듯하다고 해서 ‘울산’이 되었고, 거기에 있는 바위라서 울산바위가 되었다. 여기에 보태, 속내가 복잡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빗대어 이르는 말인 ‘우렁잇속’에서 보듯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짜기 안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썼을 수도 있다. 실제로 우렁거지는 붉은뺑애가 있는 좁다란 골로 꺾이어 쑥 들어가는 어귀이기도 한다.


'곶'이 '거지'로 되다

뒤엣말 ‘거지’도 앞말인 ‘우렁’과 마찬가지로 말밑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그 실마리로 마침 태백시 철암동에 ‘돌꾸지’라는 땅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돌꾸지는 태백시 철암동 옛 강원탄광 사택이 있던 곳이다. 전해오는 말로는 돌샘이 아홉 개 있어서 ‘돌구지’라고 했다고 하는데 한자로 ‘석구지(石九池)’로 썼다고도 한다. 하지만 땅 생김새로 보면 이때 ‘돌’은 ‘돌(石)’이 아니라 움직씨 ‘돌다(回)’의 줄기로 보아야 한다. ‘꾸지’는 ‘곶(串)→곶이→고지→구지→꾸지’로 소리바꿈한 말로 볼 수 있다. 돌꾸지는 산줄기가 밀려나와 철암천 물길이 휘돌아가는 자리로 누가 봐도 ‘돌곶’이다. ‘곶’으로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은 돌꾸지 아래에 ‘하방기(下芳基)’라는 땅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때 ‘방(芳)’은 ‘꽃’을 뜻하는 말로 중세 배달말에서는 '곶'이었다. 땅이름에서는 ‘곶’으로 뒤쳐 생각해봄직하다. ‘하방기’는 아래(下) 곶(串)이 있는 땅(基)이다. 돌꾸지를 상류 쪽에 있는 곶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겨난 땅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우렁거지’의 ‘거지’도 ‘곶(串)→곶이→고지→거지’처럼 바뀌어왔다고 볼 수 있다.

돌꾸지00.jpg 돌꾸지 (지도 출처: (앞) 조선총독부 <조선지형도>(1917), (뒤) 국토정보지리원 1:25000지도(2023))


우렁잇속 같은 골로 굽어드는 곶

그렇다면 우렁거지는 도대체 어떤 뜻으로 붙인 이름일까. 물가에서 사뭇 먼, 깊은 산골짜기니 우렁이가 많이 산다는 말은 애당초 씨알도 안 먹힐 해석이다. 산굽이가 목을 길게 빼고 가는 우렁이를 닮았다고 하기도 썩 마뜩찮다. 산굽이가 우렁이집처럼 둥글게 생겼다고 하기엔 거북하다.

땅 생김새로 보아, 우렁잇속 같이 속내를 알기 어려운 골짜기(선창깐이)로 굽어드는 불쑥 튀어나온 산굽이(곶)이라고 하여 ‘우렁곶’이라고 하다가 '우렁고지'를 거쳐 ‘우렁거지’로 굳은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 짐작일 뿐이니 행여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은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말밑은 이런 일로 먹고사는 학자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그분들이 강원도 산골 구석진 데 있는 땅이름에 관심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우렁거지 #동해시 #신흥동 #우렁이 #우렁곶


배달말 한 입 더

지돌잇길 험한 벼랑에서 바위 따위를 등 지고 겨우 돌아가게 되는 길.

안돌잇길 험한 벼랑에서 바위 따위를 안은 듯이 겨우 돌아가게 된 길. 정선군에 있는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길)’은 ‘안돌잇길+지돌잇길+다래미+한숨+바윗길’이 모여 생겨난 길 이름이다.

토막길 원래 줄기에서 몇 갈래로 갈라져 나온 짤막한 길.

생눈길(生눈길) 아무도 가지 아니한 생눈판에 처음으로 내는 길.

낭길 낭떠러지를 끼고 난 길. 후들후들거리는 팔다리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주어 바들바들 떨면서 갈 수밖에 없다.

등판길 산등성이에 난, 등판처럼 펀펀한 길.

돌너덜길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

벼룻길 아래가 강가나 바닷가로 통하는 벼랑길. <정선아리랑>에 보면,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나 여기 왔나" 하는 대목이 있다. 정선 현감과 함께 따라온 부인이 꽃베루와 성마령을 넘으며 불었다고 한다. '꽃베루'에서 보듯, 강원도말에서 '벼루'는 '베루', '별어', '베리' 따위로 나타난다. 모두 벼랑을 뜻하는 옛말 '별'에서 왔다. 꽃베루(정선군 여량면 여량리)는 곶처럼 불쑥 튀어나온 산굽잇길(벼랑)이란 뜻이다.

토끼길 강가 벼랑을 따라서 토끼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게 난 길. ‘토끼비리’라고도 하며 토천(兔遷)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이며 남쪽으로 쫓아 내려오다 이곳에 이르렀다. 절벽과 낭떠러지에 길이 막혀 여기저기를 헤맨다. 때마침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토끼를 보고 쫓아가보니 길을 낼 만한 곳이 보였다. 토끼가 지나간 길을 따라 벼랑을 잘라 길을 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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