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벨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1) 진벨, 진베리, 진벌, 진버리

by 이무완

[일러두기] ‘’처럼 굵게 쓴 붉은 글자는 아래아(ㆍ)를 홀소리로 적은 글자다.


긴 아리랑처럼 느리고 긴 땅

땅이름에서 ‘진’은 크게 세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길다’는 뜻이다. 지역말에서 ‘길다’는 [질다]로 소리낸다. 한자로 뒤칠 때는 흔히 길 장(長) 자를 써서 ‘장곡(長谷), 장강(長江), 장벌(長伐)’처럼 나타난다. 동해시 북쪽 사뭇재에서 어그레봉으로 가는 긴 골짜기와 천곡동 한양아파트 아래쪽부터 천곡성당이 있는 가매굼까지 이르는 골짜기를 가리켜 ‘진골’이라고 했다. 길게 난 골이라서 ‘진골’이다. 강릉에서 평창 오대산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도 ‘진고개’(960미터)다. 27.5킬로미터에 이를 만큼 고갯길이 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론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디지털강릉문화대전)으로도 본다. 비슷한 보기는 얼마든지 있어서 ≪조선지지자료≫(강원도)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 있다.


진둘우: 장평(長坪, 강원 인제, 군내면 가아리)

진등: 장등치(長噔峙, 강원 강릉, 성산면 보광리)

진모들: 장사평(長沙坪, 강원 울진, 상군면)

진미: 장산리(長山里, 강원 양양, 사현면 장산리)

진소: 장소(長沼, 강원 인제, 내3리면 아계동)


물이 많아 질퍼덕거는 땅

두 번째는 물기가 있어서 차지다고 할 때 질다는 뜻이다. 진흙, 진창, 진펄 따위에서 볼 수 있다. 한자로 뒤칠 때는 대개 진흙 니(泥) 자를 쓴다. ‘이현’(泥峴․진고개) 같은 땅이름이 있다. 지금은 고개처럼 보이지 않지만 서울중앙우체국 옆에서 광화문까지 이르는 길이 온통 진흙길이라고 해서 ‘진고개’라고 했다고 전한다. 지금 보면 고개처럼 보이지 않지만 본디 명동성당 터와 어슷한 높이였다고 한다.


진달리: 이교리(泥橋里, 강원 인제, 기린면 현리)

진흑둔지: 이평(泥坪, 강원 인제, 군내면 니평리)

딘고: 이현(泥峴, 강원 정선, 도암면 구숙리)

진고: 이현(泥峴, 강원 양양, 서면 논화동)

진고개(22. 12. 24. 동아 7면).jpg 서울 진고개 (출처: ≪동아일보≫ 1922. 12. 24. 7면 <진고개의 대목준비>)

진을 치고 머물던 자리

세 번째는 군사들이 진을 친다고 할 때 그 ‘진’이다. 이때는 ‘진’(陣) 자를 써서 ‘진곡’(陣谷)이다. 쇄운동 진골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던 곳이라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다만 이런 뜻으로 생겨난 땅이름은 역사 사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막연히 진칠 진(陣) 자에 이끌려 뒷날에 지어난 유래일 수 있다. 다음 땅이름 둘도 실제로 진을 친 곳이라기보다 긴 들이 소리바꿈으로 [진들/진드루]처럼 된 다음 어금지금한 소리가 나는 한자로 바꿔썼다고 보아야 한다.


진평(陳坪, 강원 삼척, 말곡면 자지리)

진드루: 진평(陣坪, 강원 양양, 사현면 첨교리)

진벨.jpg 출처: ≪조선지형도≫ 1917년, 노란색으로 나타낸 데를 가리켜 진벨이라고 했다.

긴벌이 진벌을 거쳐 진벨이 되다

자, 그러면 ‘진벨’은 어떤 뜻으로 지어낸 이름일까. 벨이 무슨 뜻인지 아리숭하기 그지없다. 진벨은 한재에서 동쪽 바닷가 추암마을에 있는 만년포까지 길게 이어지는 긴 골짜기를 가리킨다. 이를 뒷받침하듯 ≪삼척군지≫ <북삼면> ‘기원’에 “대치(大峙)부터 추암(湫岩) 만년포(萬年浦)까지 이르는 긴 들판 골짜기의 이름인 장벌(長伐)<진버리>을 취용(取用)한 것으로 지금 호현리 <진배리>라는 속칭에 겨우 남아있다”고 적었다. 진벨, 진버리, 진배리를 한자로는 ‘장야곡’(長野谷), ‘장벌’(長伐)이라고 썼는데 말 그대로 ‘긴 벌(판)’이다. [긴] 소리가 구개음화하여 ‘진벌’이 되고, 늘려 소리내면 ‘진버리’가 된다. [ㄱ] 소리가 [ㅈ] 소리로 바뀌는 구개음화는 동해․삼척 말에서는 매우 흔하다. 진진밤(긴긴밤), 지다랗다(길다랗다), 지두마하다(길다마하다), 질(길), 질동무(길동무), 짐매기(김매기), 짐치(김치), 짚다(깊다), 지루다(기르다) 따위 일상 말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여기에 다시 [ㅣ] 소리가 보태지면 ‘진벨, 진베리’가 된다.

처음에 ‘진벨’은 긴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호현동 마을을 싸잡아 가리키는 대이름씨가 되었다. 진벨을 달리 ‘진벨버당’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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