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25) 만년표, 마연포, 말년포
촛대바위에서 서쪽, 추암동과 과동 사이의 늪지를 가리킨다. 예전에는 큰 호수였다. 깊은 수렁이라 할 만큼 지반이 매우 약한 곳이다. 이곳을 지나는 철길을 지탱하던 다리 기둥이 지표 아래로 푹 가라앉은 일이 있어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348쪽)
≪동해시 지명지≫에 나오는 ‘만년포’ 설명이다. 어떤 까닭으로 ‘만년포’라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호수였다가 늪지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만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깊은 수렁’과 같은 ‘늪지’라는 말을 실마리 삼아 말밑을 더듬더듬 찾아가 보자. 잘 알다시피 ‘늪’은 못처럼 물을 가두어 놓은 곳이 아니라 물이 저절로 모이는 자리다. 일부러 사람이 시간과 품을 들여 파내지 않고 땅이 낮아서 저절로 물이 고여 생겨난다. 더러 강이나 내가 본디 흐르던 물줄기를 틀면서 본줄기에서 동떨어지면서 늪이 생겨나기도 하고 땅이 움푹 꺼지면서 늪이 되기도 한다. 이런 데를 ‘늪’이라고 하지만 ‘못’이라고도 한다. ‘못’은 쓸모를 미리 생각하고 파거나 둑을 쌓아 물을 가두는데, 바닥 흙이 좋으면 연을 길러 꽃도 보고 뿌리도 먹었다. 이런 못은 달리 ‘연못’이라고 했다.
‘만년포’는 내가 흘러와 바다로 들어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지금이야 흐리터분하지만 촛대바위 남쪽으로 대구천이 흘러와 동해와 만나는 곳이라면 조그만 고깃배 정도는 얼마든지 묶어둘 만하지 않았을까. ≪조선지형도≫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만년포는 폭이 50미터, 길이가 250미터, 넓이는 약 2700여 평에 이른다. ‘늪’으로, ‘못’으로 보기도 하겠지만 사람에 따라 ‘개’로 볼 만하다. 그러니 포(浦)라고 한 데서 그다지 어색하진 않다.
문제는 ‘만년’이란 말이다. ‘만년’(萬年)은 ‘오랜 세월’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미 있던 배달말을 뒤치면서 쓴 말이리라. 여러 날 ‘만년’의 말밑을 캐보려고 옛지도도 들여다보고 책장에 꽂힌 책들도 뒤적이고 내친김에 추암에도 가보았다. 그러다 마음속에 딸깍 스위치가 켜지고 ‘커다란 늪(못)이 있는 개’라는 뜻으로 ‘말못개’라고 하다가 ‘만년포’로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짜임새로 볼 적에 ‘말+못+개’다. 이때 ‘말’은 말벌, 말잠자리, 말매미, 말조개, 말개미, 말고개 같이 이름씨에 붙어 ‘크다’는 뜻을 보태는 앞가지로 볼 수 있다. 말못개(마못개)를 한자로 뒤치면서 한자에 찌든 책상물림들이 ‘말’은 마(馬)로, ‘못’은 연(淵)으로, ‘개’는 포(浦)로 뒤쳐 ‘마연포’라고 쓴다. 하지만 뚝심 떡심으로 사는 백성들 말이 아니니 예부터 써온 말인 ‘말못개’ 뿐 아니라 ‘말연포’가 뒤죽박죽 섞여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뒷날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1310~?)가 고려 말 벼슬을 버리고 추암에 와서 해암정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덧붙으면서 ‘마연포’, ‘말년포’를 ‘만년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굳었으리라. 그도 그럴 만한 게 말년(末年)과 만년(晩年)과 만년(萬年)은 소리도 그렇고 새김도 섞갈리는 까닭에 헛갈려 쓰는 사람이 적잖다.
마무리하면서 하는 말이지만 ‘말못개’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기록이 없으니 최선을 다해 스스로 답해보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엉성궂지만 물음 너머를 생각하지 않으면 실체에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다른 생각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게 아니지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고 새롭게 내딛는 걸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 준비해!
뚝심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
떡심 억세고 질긴 근육.
엉성궂다 「1」 꽉 짜이지 아니하여 어울리는 맛이 없고 매우 빈틈이 많다. 「2」 살이 빠져서 뼈만 남을 만큼 매우 버쩍 마른 듯하다. 「3」 빽빽하지 못하고 매우 성기다. 「4」 사물의 형태나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
말년(末年) 「1」 일생의 마지막 무렵. ¶말년 운세. 「2」 어떤 시기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제대 말년.
만년(晩年) 나이가 들어 늙어 가는 시기. 「친척말」 노년, 늘그막
만년(萬年) 「1」 오랜 세월. 「2」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상태. ¶만년 과장
<추암 일출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