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6) 전천, 살천, 북천, 융천, 소고리천
동해시에서 가장 큰 내를 꼽으라면 단연 전천이다. 백봉령에서 흘러온 신흥천과 고적대, 청옥산, 두타산에서 흘러온 무릉천이 파수굼이에서 만나 바다로 흘러간다. 전천 말고도 살천, 융천, 북천, 소고리천, 박곡천, 혈천 따위가 있다. 오늘은 앞서 살핀 전천을 비롯해서 다른 이름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오늘날 이름은 ‘전천’(箭川)인데, 이때 ‘전’(箭) 자의 훈이 ‘화살’이라는 뜻이라서 ‘살천’이라고도 한다. 전천을 달리 ‘살천’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살’을 화살을 가리키는 ‘살’로 흔히 생각한다. 그래서 “전죽(箭竹)이 이곳에 넘쳐흘러 천을 이루었기 때문”(삼척향토지, 123쪽)이라고 하거나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왜군과 싸우면서 쏜 화살대가 무수히 떠내려 왔다 하여 화살 전, 내 천을 써서 ‘전천’이라고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사회과 보조교과서인 ≪너에게 감, 동해≫(강원특별자치도동해교육지원청, 2025)에서 이 같은 해석을 생각없이 그냥 따랐다.
하지만 전천은 ‘살내→ 살천→ 전천’으로 바뀌어왔다고 보아야 한다. 배달말에 ‘살’을 ‘살얼음’, 살물결, 살얼음판(살판)에서 보듯 이때 ‘살-’은 온전하지 못함, 얇음이란 뜻을 보탠다. 살살, 살짝, 살랑 같은 말 느낌도 그렇다. ‘살’과 뜻이 어금지금한 앞가지로 ‘설’이 있다. 설잠, 설깨다, 설익다, 설듣다, 설보다 말 따위에서 보듯 ‘살’과 ‘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살’을 ‘온전하지 않음, 충분치 않음’의 뜻으로 보면 ‘살내’는 ‘얕게 흐르는 내’로 볼 수 있다. 석회암 지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른내이기도 해서 비 올 때 말고는 냇줄기가 가늘고 물이 그닥 깊지 않다.(※더 자세한 내용은 ‘전천 이야기① 살천과 살수’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다른 이름으로 ‘북천’(北川)이 있다. ‘북천’은 ‘뒷뜨르’(북평)를 흐르는 내라고 해서 ‘뒤내’라고 했고 한자로 쓰면서 ‘북천’으로 쓴 듯하다. ≪삼척군지≫ <북삼면> ‘면세’부터 보자.
북천(北川)의 옛 이름은 전천(箭川)이다. 신흥리 백복령(白卜嶺) ․ 이기령(耳基嶺) ․ 고적대(高積臺) ․ 만경대(萬景臺) ․ 청옥산(靑玉山) ․ 연칠성령(連七星嶺) ․ 두타산 등 일대의 분수계(分水界)에서 발원하여 크고 작은 시냇물을 빠짐없이 통합하고 십수 회 굽이치며 남쪽 혹은 동쪽으로 흐르면서 용소(龍沼) ․ 흑천(黑川) ․ 비천(飛川) 혹은 무릉계(武陵溪) 등을 이루다 마침내 파수천(派水川)을 이루는데 그 아래쪽이 곧 북천(北川)이다. 구미리와 송정리 사이를 완만하게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삼척향토지≫ 설명도 같이 살펴보자.
전천(箭川), 북평읍에 있다. 예전에는 융천(蕯川)이라 하였고 소고리천(所古里川)이라고도 하였다. 청옥산과 백복산, 두 산에서 발원하여 50리가 이어진다. 세상에 두타산성이 함몰할 때 파소(巴沼)에서 피가 흘렀다고 전해져 ‘혈천’이라 불려졌고 전죽(箭竹)이 이곳에 넘쳐흘러 천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하였다고 한다. 연어ㆍ은어ㆍ황어가 많이 자라고 특산물은 흑현(黑蜆)이다.(123쪽, ※흑현: 민물조개로 ‘돌조개’나 ‘가막조개’로 짐작한다.)
내 보기에 ‘융천’(蕯川)은 ‘살천’(薩川)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융천’(蕯川)에서 한자 ‘융’(蕯)의 새김은 ‘아내’다. 한자 땅이름을 보면 ‘꾸밈말+이름씨’ 꼴인데, ‘아내의 내’라니 생뚱맞기 그지 없다. 짐작컨대 보살 살(薩) 자와 아내 융(蕯) 자 생김새가 어금지금한 탓에 잘못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뒤를 뜻하는 되 융(戎) 자로 생각하여 ‘융천(戎川)’이라고 했는데, 한자로 쓰면서 소리가 같은 한자로 썼을 수도 있다. ≪훈몽자회≫에 보면, ‘오랑캐’를 뜻하는 한자인 ‘적’(狄), ‘호’(胡), ‘이’(夷), ‘강’(羌)의 훈을 모두 ‘되’라고 했다. ‘되’는 북쪽 오랑캐나 중국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되놈’(뙤놈)이라고 할 때, 그 ‘되’다. 한편 바닷가 사람들은 북풍을 ‘된바람’이라고 한다. ‘되’는 곧 ‘뒤’고, ‘뒤’는 곧 ‘북’(北)을 가리킨다. 그래서 ‘융천’은 배달말로 뒤치면 ‘뒤내’가 된다. 자연스럽게 다른 이름인 ‘북천’(北川)하고도 이어진다. 남쪽을 앞으로 여기고 북쪽을 뒤로 여기는 우리 조상들 생각이 그대로 담긴 말이기도 하다.
끝으로 ‘소고리천(所古里川)’은 어떻게 생겨난 이름인지 톺아보자. 산이고 강이고 마을이고 본디 토박이 이름이 먼저 있고 뒷날 한자로 쓴 땅이름이 생겨난다. 내 이름이라고 다르지 않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작은 물줄기가 모여 도랑이나 개울을 이루고, 도랑이나 개울이 모여 내를 이루고, 내가 모여 가람(강)을 이뤄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도랑이나 개울에 이름이 없기도 하지만 모래내, 까치내, 아우내, 버드내, 뱀내, 너브내, 한내, 달내, 가무내, 고든내(고드내), 먼내, 하다 못해 앞내, 뒷내 같은 토박이 이름이 있게 마련이다. 소고리천은 ‘바ᇧ구리내’라고 했다. 구리 밖을 흐르는 내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오늘날 북평 지역을 ‘구리 밖’(박구리>박곡, 전천 남쪽)과 ‘구리 안’(전천 남쪽)으로 갈라 보았다. 밗구리내는 다시 바구리내, 바구리내로 소리바꿈하는데,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소고리천(所古里川), 박곡천(璞谷川, 朴谷川)으로 건너뛴다. 어라, 난데없이 ‘소고리천’은 뭐냐 싶겠지만 소(所)를 ‘바 소’로 새겼기 때문이다. 뒤엣말 ‘구리’를 소리가 어슷한 ‘고리(古里)’로 적으면 ‘바고리’가 된다. 박곡도 ‘밗구리/밗굴’을 소리가 비슷한 한자로 적었을 뿐이다. 북평다리를 전천교, 북평교라고 하지만 옛사람들은 ‘바굴다리’라고도 했다.
이제 마무리하자. 한 물줄기라고 해도 곳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한강만 해도 아리수, 욱리하, 이하, 왕봉하, 북독, 한수, 열수, 경강, 한강, 용산강, 서강 같은 이름이 있고, 한강 물줄기를 거슬러 가면 소양강, 조양강, 홍천강, 북한강, 평창강, 주천강, 동강, 섬강, 남한강 같은 이름이 있다. 전천이라고 다르지 않다. 무릉천과 신흥천이 만나는 파소굼이부터 바다에 이르는 내를 흔히 전천이라고 하지만, 구리 안팎을 가르는 내로 보면 밗구리내(소고리천, 박곡천)요 뒷뜨르를 가로지르는 내로 보면 뒷내(융천)요 얕게 흐르는 내로 보면 살내(전천, 살천)요 파소굼이와 얽으면 혈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