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8)
땅이 있고 그 땅에 사람이 터 잡고 살면서 이곳과 저곳을 구별해야 하니 땅이름이 생겨난다. 땅이름은 땅 모양새나 앉음새, 높고 낮음, 넓고 좁음, 길고 짧음, 냇줄기나 산줄기의 흐름, 믿음, 역사 사건 들로 해서 붙인다. 문제는 글자로 적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 뜻에서 사뭇 멀어진, 엉뚱한 땅이름들이 적지 않다.
발한 지역은 지금은 쇠락한 곳이지만 한때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던 옛 묵호읍의 중심지였다. 사뭇재 남서쪽 골짜기를 ‘큰바란이’라고 했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은 ‘작은바란이’라고 했다, 땅이름 ‘발한’은 이곳에 조선 숙종(1674~1720) 때 청주 한씨들이 이곳에 와서 살면서 한씨 성을 따서 ‘발한’(發韓)이라고 하다가 조선 현종 때 ‘발한’(發翰)이 되었다고 한다. 강릉부사 이유응(1860~1861 재직)이 “성씨를 마을 이름에 넣으면 좋지 않으니 글 좋아하는 선비가 많이 나오라는 뜻으로 날개 ‘한’(翰) 자를 쓴 ‘발한’(發翰)”으로 바꾸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사회 보조교과서인 ≪너에게 감, 동해≫만 봐도 땅이름도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 ‘큰바란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어. 이곳에 청주 한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해 선비들이 많아지자 발한이라 불렀대. (강원특별자치도동해교육지원청, <너에게 감, 동해>, 2025, 57쪽)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사뭇재에서 발한동 시내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구석시 시대 유적이 나왔는데 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터 잡고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면 ‘바란이→ 발한’으로 바뀌었다고 보아야 한다. 큰바란이든 작은바란이든 ‘바란’이라는 이름이 이미 있었는데, 조선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한자로 적으면서 ‘발한’이 되었다고 봐야 옳다.
그러면 ‘바란’은 무슨 뜻일까. 내 생각이지만 ‘바란’은 ‘발 안’에서 온 말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발’은 ‘불’에서 온 말로 산을 뜻한다. 불은 ‘산’의 옛말인 ‘붇’에서 왔다. 말하자면 ‘붇+안’이 ‘불안’을 거쳐 홀소리 바뀜이 일어나면서 ‘발안(바란)’으로 된 듯하다. 지도를 보면 ‘바란이’라고 했는데, ‘-이’는 지역말에서 이름씨 뒤에 흔히 붙은 뒷가지로로 볼 수 있겠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는 [바란이]든 [버란이]든 [부란이]든 소리가 조금 달라도 대충 통한다. 그런데 땅이름을 한글이 아닌 한자로 받아 적으면서 원래 이름에서 멀어지고 만다.
한편, 조금 달리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이를테면 ≪조선지지자료≫(강원도3)에 발한리에 ‘전평’(前坪)이란 땅이름이 나온다. ‘전평’은 말 그대로 ‘앞들’이다. 바란이에서 볼 때 동쪽으로 펼쳐진 벌로 보면 앞들이라는 이름이 생겨날 법하다. ‘들’은 곧 ‘벌’이다. 벌 안쪽에 있는 마을로 보면, 자연스레 ‘벌안’이 되는데, 홀소리 바뀜이 잦은 우리말 특성으로 ‘바란(발안)’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바란’이라고 하던 곳에 마침 청주 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한씨 성에 이끌려 땅이름을 ‘발한(發韓)’이라고 적다가 뒷날 강릉부사 이유응이 ‘발한(發翰)’으로 되었다는 설명은 아주 사실에 어긋난 말은 아니지만 말밑을 제대로 붙든 해석은 아니다. 사뭇재에서 발한동 시가지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구석기 유적이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훨씬 더 먼 옛날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 자연스런 귀결로 조선 중기 청주 한씨가 와서 살기 전에도 이미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었을 터이다.
풀에 나무에 바위에 땅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는 세상과 알아간다. 내가 딛고 선 자리에서 일구어낸 내 느낌, 내 이야기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간 만큼 세상은 환해지고 넓어진다. 그런 눈으로 보면 ‘발한’은 높은 자리에서 ‘에헴’하고 방귀깨나 뀌던 사람들이 던져준 이름이지 결코 밭을 일구고 김매고 고기 잡던 백성들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