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째비골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9) 도째비골, 톳재비골

by 이무완

묵호진동의 북쪽 까막바위 못 미처 등대가 있는 산쪽으로 올라가는 조그마한 골짜기. 옛날 이곳이 으슥하여 도깨비가 자주 나왔던 데에서 붙은 이름이다. 묵호항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이 골짜기가 보인다.(97쪽)


≪동해시 지명지≫에 나온 ‘또째비 / 도깨비골’ 설명이다. 달리, 도째비골, 톳제비꼴이라고도 한다. 글로 적지 않고 입으로 전해온 이름인지라 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 골이 으슥해서 도깨비가 자주 나왔다”거나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면 푸른빛들이 보여 ‘도깨비불’이라 여긴 사람들이 ‘도째비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도깨비 살던 골

흔히 도째비골 말밑을 ‘도깨비’로 본다. 도깨비가 무엇인지 보자.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다가 버린 빗자루나 짚신, 부지깽이, 절굿공이 같은 데에 털커덕 들러붙어 생겨난 영물로 보았다.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짓을 많이 하지만 그닥 밉지 않은 존재다. 권정생이 쓴 ‘안동 톳제비’에 보면 우리 조상들이 도깨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잘 나타난다. 조금 길지만 들어본다.


안동 톳제비는 익살맞은 장난꾸러기여서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놀이 친구처럼 정이 간다. 일본의 도깨비는 그 모양부터 사납고 흉하며 인간들에게 약탈과 살인까지 범하는 악귀인 데 비해 우리의 톳제비는 너무도 착하다.

술 취한 남자가 밤새도록 톳제비와 씨름을 하다 날이 센 뒤에 보니 버려진 디딜방아헌 빗자루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서로 몸을 비비며 사용해 온 빗자루나 디딜방아 같은 연장을 불에 태워 없애지 않는다. 그것들은 비록 나무토막이나 수수 대궁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위해 오랜 세월 수고해 준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영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그래서 톳제비는 죽은 뒤엔 더욱 자유로운 몸으로 우리의 이웃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방의 도깨비는 어떤지 자세히 모르지만 안동 톳제비는 모두 무일푼의 가난뱅이다. 부자방망이도 없고 알라딘의 등잔 같은 초능력도 없다. 기껏해야 술 취한 남정네를 끌고 다니며 가시밭에서는 “여긴 물이니까 바지 벗으라.”하고 물에서는 “여긴 가시밭이니 바지 입으라.” 하면서 골탕을 먹인다. 그러나 절대 죽이거나 먼 곳에까지 데리고 가지 않는다.

간혹 짓궂은 톳제비는 심술쟁이 놀부 같은 인간을 잡아다 자지를 열댓 발이나 늘여 가지고 강물에 다리를 놓는다지만 그런 다리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어쩌다가 어느 산막 뒤에 쌓아둔 나뭇가리나 보리밭 한 녘이 톳제비들 때문에 어질러졌다는 말은 있지만, 절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권정생, 빌뱅이 언덕, 창비, 2012, 93~94쪽)


이렇게들 도깨비를 친숙하게 여겼다. 다만 어떤 까닭으로 ‘도깨비’란 말을 얻었는지는 꽤 흐리터분하다. ‘독각귀’(獨脚鬼․외다리 귀신)가 소리바꿈으로 생겨난 말로 보기도 하고, 절굿공이를 빗댄 ‘돗구+아비’를 말밑으로 보기도 한다.

배달말 사전에서는 ≪석보상절≫(1447)에 나온 ‘돗가비’를 말밑으로 본다. ≪석보상절≫ 제9권에 사람이 졸지에 죽는 아홉 가지 경우를 드는데, 이때, 사람들은 부질없이 목숨을 살려달라고 비는 헛된 대상이 돗가비다. 한자로는 ‘망량(魍魎)’으로 적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21년 2월 12일 기록에 독갑방(獨甲房)이라는 무당이 주술을 써서 동궁과 현빈궁 사람을 해하려고 했다는 의심을 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독갑’은 도깨비를 적은 말로, ‘방’은 귀신을 부리는 무당을 뜻한다. 배달말 학자들은 ‘돗+아비’로 본다. ‘돗’은 ‘도섭’이다. 능청맞고 수선스럽게 변덕을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돗가비’는 수선스럽고 능청맞게 변덕을 부리는 아비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이 ‘돗+ㄱ+아비→ 도ᄭ가비→ 도까비→ 도깨비’로 바뀌었다 한다. 암튼, 돗가비, 도채비, 독갑(이), 톳제비, 또깨비, 도째비라는 말이 모두 도깨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깨비불이 벌벌 나는 골

앞서 말했듯 도째비골은 두 가지 유래가 떠돈다.

하나는 어두컴컴한 밤 시퍼런 불덩이가 벌벌 날아다니는 으슥한 골이라서 돗가비골이라고 했다고 하거나 도깨비가 자주 나타나는 골짜기라고 해서 ‘도째비골’이 되었다 한다. 이렇게 보면 말밑은 아주 깔끔하지만 땅 모양새는 눈곱만큼도 살피지 않았다는 한계가 다다른다.

또 다른 설로는 ‘또 제비골’이란 말장난 같은 해석이다. 1960~1970년대 묵호읍이 한창 오징어와 명태잡이로 흥청거릴 때 이쪽에서도 밀리고 저쪽에서도 내몰린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온다. 실제로 1970년 묵호읍 인구는 6만 967명에 이른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산비알에 제비 집 짓듯 움막을 지었다고 ‘또 제비골’이라 했다가 ‘도째비골’로 소리바꿈했다고들 한다. 설령 그렇게 집들이 뚝딱뚝딱 생겨났다손 쳐도 말재기들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도째비골은 오학산 줄기가 동쭉으로 쭉 뻗어나와 밋밋한 쑥밭등을 이루고 주공아파트에서 남쪽으로 틀어 가다가 묵호등대 앞까지 가서 뚝 떨어진다. 도째비골은 그 줄기 북쪽으로 난, 월소 택지 사이로 난 좁고 가파른 골짜기다. 우리가 땅이름을 짓는다면 ‘가파른 벼랑이 있는 좁은 골’이라는 특징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지 않을까.


제비리와 도째비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도째비골, 톳재비골, 또째비골, 도깨비골 같이 여러 가지로 쓰지만 ‘톳재비골’을 더 옛말로 보고 거센소리가 예사소리로 적으면 ‘돗재비골’이 된다. ‘돗재비골’은 ‘돗+재비+골’과 같이 쪼개볼 수 있다. ‘돗’은 산의 옛말인 ‘(닫/달/돋)’으로 볼 수 있다. ‘재비’는 제비골, 제비실, 제비울 같은 땅이름에서 볼 수 있다. 이때 ‘제비’는 ‘조비’에서 온 말로, ‘좁쌀, 좁다, 쪽박’ 따위 말의 뿌리인 ‘좁-’으로 볼 수 있다. ‘좁다’는 뜻이다. ‘좁이골→ 조비골→ 저비골→ 제비골’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강릉시 구정면에 ‘제비리’란 데가 있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은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제비리(濟飛里)는 마을에 제비 둥지처럼 된 연소형의 명당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제비리에 있는 등고비에서 제비가 높이 날아 연소동에 가서 둥지를 틀고 집을 지은 형국이라고 한다.


사람 가까이 살아 친숙하고 복을 물어다준다고 믿는 길조로 여기는 새 이름에 풍수설을 엮어 말밑을 지어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연소(燕巢)는 제비집인데, 이곳 마을 앉음새를 보면 마을을 빙 둘러 산줄기가 감싸고 구우동 쪽으로만 열렸다. 보는 눈길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을 반경이 고작 100미터 정도로 아주 작은 골이라서 ‘좁이골’이라고 하다가 뒷날 ‘제비리’로 되었다고 보인다.

다시 돗재비골을 보면 ‘산 사이에 있는 좁은 골짜기’라서 ‘돗좁이골’이 ‘돗재비골’이 되었고, 도깨비와 어금지금한 소리로 해서 ‘도째비골, 도깨비골, 또깨비골’ 같은 비슷한 땅이름을 만든다.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조비리와 도째비골

물론 달리 해석해볼 여지도 있다. 삼척시에 조비동이 있다. 조비동은 ‘조비리(鳥飛里)’에서 딴 행정지명이다. ≪삼척향토지≫에 “최초 명곡리(明谷里, 새베실)로 후에 조비실(鳥飛里)”(28쪽)로 되었다 하고, ≪삼척군지≫ <부내면> ‘조비리’에는 “처음에 명성곡(明星谷)<새베실>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조비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짐작컨대 애초 벼랑 사이에 있는 좁다란 마을이라서 ‘새베실’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한자로 적으면서 조비리, 사비곡, 명성곡, 명곡리 같은 이름으로 둔갑한 셈이다. ‘새베실’은 ‘사이+볋+실’이 말밑이다. ‘새’는 ‘사이, 삿’이요, ‘베’는 벼랑의 옛말인 ‘볋(>별>벨>베)’이며, ‘실’은 마을이나 골을 가리키는 신라말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삼척 '조비리'의 말밑

‘조비리’가 생겨난 이름 유래로 기대어 보면, 돗재비골은 ‘돗(산)+새+볋+골’로 쪼개볼 수 있다. 묵호등대가 있는 산줄기와 월소 택지가 있는 산줄기 사이에 있는 좁고 비탈진 골로 보면 얼마든지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사람 살지 않던 골에 삼척시 ‘조비리’처럼 배달말과 한자말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오늘날 ‘도째비꼴’로 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앞: <동해시 지명지>(2017)에 나온 도째비골 유래, 뒤: 삼척시 조비리(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오늘날, 도깨비를 부르는 마음

지금도 도째비골, 톳째비골, 또째비골, 톳제비골, 도깨비골처럼 다양한 꼴로 이름이 떠돈다. 동해시는 지역 행사와 관광지와 그럴듯하게 엮어 시(市)을 널리 알리는 데 쓸 요량으로 ‘도째비’를 ‘도깨비’로 알리려고 애쓴다.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재미를 찾고 한번 들으면 단박에 기억할 수 있어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 아니겠나. 묵호등대와 도째비골에서 여는 난장 이름도 ‘묵호 도째비 페스타’다. 행사도 ‘물도째비 난장, 도째비를 찾아라, 도째비 의상과 분장 콘테스트, 밤도째비 공연’이다.

묵호 도째비 페스타 (사진 출처: 동해시청 누리집)

배달말 한입 더

난장 1. 정해진 장날 외에 특별히 며칠간 더 여는 장. 2. 길가에 물건을 임시로 벌여 놓고 파는 장.

난장판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뒤섞여 떠들어 대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 또는 그런 상태.

도깨비놀음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괴상하게 되어 가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깨비불 1. 밤에 무덤이나 축축한 땅 또는 고목이나 낡고 오래된 집에서 인 따위의 작용으로 저절로 번쩍이는 푸른빛의 불꽃. 2. 까닭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불. ≒신화.

도깨비소리 내용이 전혀 없고 사리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

도깨비시장 상품, 중고품, 고물 따위 여러 종류의 물건을 도산매·방매·비밀 거래 하는,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한 비정상적 시장. =도떼기시장.

도깨비짓 1. 도깨비가 사람을 홀리려고 하는 못된 장난. 2.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거나 터무니없는 짓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

도깨비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의 판국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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