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바위와 호박재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70)

by 이무완

호박은 우리 땅에 16~17세기쯤 중국을 거쳐 들어왔으리라 짐작한다. 그런 까닭에 오랑캐 땅에서 들어온 박이란 뜻으로 생겨난 이름이다. 호빵, 호떡, 호밀, 호각, 호주머니, 호콩(땅콩의 딴 이름), 호두(←호도), 후초(←호초) 같은 말에 붙은 앞가지 ‘호(胡)’는 오랑캐나 중국(청)을 말한다.


호박처럼 생긴 바위?

동해시 동쪽 용정동에 ‘호박’이란 말이 든 땅이름이 있다. 하나는 고개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바위 이름이다. 호박재는 용정동에서 천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당재(당말재, 당고개)가 관로였다면 호박재는 호젓한 고갯길이다. 전하는 말로는 ‘호박바위’가 있는 고개라서 ‘호박재’라고 했다고 한다. 호박바위라면 내남없이 호박처럼 생긴 바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송정마을 공동묘지가 있는 부근으로서, 바위가 방아의 호박처럼 둥글고 움푹하게 파인 것이 다섯 개쯤 있다.(≪동해시 지명지≫, 2017, 314쪽)


어라, 호박재나 호박바위의 ‘호박’은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성 채소인 호박이 아니다. 방아의 ‘호박’이다. 표준어로는 ‘확’이다. 확은 방앗공이로 찧을 수 있게 돌절구 모양으로 우묵하게 판 돌이다. ‘확’은 [호악]처럼 길게 소리내는데, 재나 바위에 붙여 쓰면서 [호박]과 어금지금하게 소리 나면서 ‘호박’으로 굳어진 듯하다. 마치 확처럼 둥글고 우묵하게 팬 바위는 이 지역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구멍이 숭숭 난 바위

석회암 지대에서는 수많은 틈과 구멍과 동굴이 생겨난다. 석회암 갈라진 틈이나 주변보다 낮은 곳에 빗물이 고여서 주로 탄산칼슘으로 된 석회암을 녹이는데, 물에 잘 녹는 부분과 그렇지 않고 남은 부분은 나타난다. 이 과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땅 밖으로 드러난 바위를 독일말로는 ‘카렌(karren)’이라고 하고 프랑스말로는 ‘라피에(lapies)’라고 한다지. 그런데 우리말로는 석회암이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생겨난 바위를 가리키는 말이 따로 없다. 그러니 확과 닮았다 하여 '확바위', 구멍이 숭숭 났다고 '구무바위'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실제로 당고개에서 북서쪽으로 직선 거리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석회동굴인 ‘천곡동굴’이 있고, 천곡동과 맞닿은 산줄기를 따라 ‘보테미(보트미)’라고 하는 물빠짐 구멍(침수혈, 싱크홀)에서 있어서 빗물이 흘러 오다가 감쪽같이 사라지곤 한다. 이런 구멍은 대개 땅밑에 있는 석회동굴로 통한다. 이곳 보테미로 흘러든 빗물은 바닷가에 있는 감추사 쪽에서 샘으로 솟아난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지역 말에 ‘확길’(생눈을 파고 걸어간 길, 확길)이 있다. 실제 소리는 [확⁚질]에 가깝다. 눈이 내려서 쌓인 그대로인 생눈(숫눈)을 누군가 길을 내면서 간 흔적이 마치 확 모양 같다고 해서 ‘확길’이라고 한다.

석회암 지대 땅 모양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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