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과 앞산과 안산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73)

by 이무완

애국가 2절 맨 처음 나오는 말이 ‘남산’이다. ‘남산’ 하면 다들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남산을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표준어대사전≫을 보면, 남산은 서울 남산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남산1(南山) 「명사」 남쪽에 있는 산. 주로 성곽의 남쪽에 있는 산을 이른다.

남산2(南山) 「명사」 [지명] 서울특별시 중구와 용산구 사이에 있는 산. 북악산, 낙산, 인왕산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방벽으로 옛 성벽은 이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높이는 262미터.≒인경산.

남산3(南山) 「명사」 [지명] 함경남도 북청군에 있는 산. 높이는 1,047미터


뜻매김처럼 ‘남쪽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이름씨로 우리 땅 곳곳에 있는 남산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사전을 보면 전국에 101곳이 있다고 나온다. 동해시에만 해도 남산이 다섯이다.


(만우동) 내매골 안쪽에 있는 높은 산, 앞산이라고도 하고 남산이라고도 한다.

(삼화동) 금광골과 아랫골 사이에 잇는 해발 200미터 높이인 산이다. 방현마을의 남쪽에 있어서 남산이라고 한다. 이곳에 학들이 많이 있었는데 산 아래 심불사가 있고 참나무가 무성하다. 지금은 쌍용씨엔씨 땅이다.

(삼화동) 옛 삼화사에서 개울(삼화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봉우리다. 삼화사의 안산, 노적봉이라고 했다. 지금은 쌍용씨엔이 채석장이다.

(이로동) 죽림 마을 앞에 있던 산을 일컫는다. 산 모양이 반원형이었는데 석회석을 캐면서 지금은 없어졌다.

(호현동) 범아고개 맞은편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다. 이곳에 천제단이 있어서 정월 초하루 새벽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Namsan2.jpg 맨 앞부터 만우동, 삼화동, 이로동, 호현동의 남산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동서남북은 나침반 바늘을 잣대로 삼기 때문에 어느 쪽을 보든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앞쪽과 뒤쪽, 오른쪽과 왼쪽은 내가 어느 쪽을 보고 섰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째서 앞산이 남산이 되는가 하는 물음이 생길 수 있다. 답은 아주 단순하다.

잘 알다시피 한반도는 겨울에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불어온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등지고 볕이 잘 드는 터를 골라 남쪽을 보고 집을 지었다. 자연히 앞쪽이 곧 남쪽으로 통하게 된다. ≪훈몽자회≫(1527)에도 남(南)을 ‘앏 남’으로, 북(北)을 ‘뒤 북’이라고 새김을 달았다.

그렇다면 남산은 처음부터 남산이였을까. 아니다. 배달말로는 ‘마뫼’라고도 하고, ‘목멱산’이라고도 했다. 마뫼는 ‘마+뫼’로 쪼갤 수 있다. ≪성호사설≫(이익, 1760)에도 “남풍을 ‘마(麻)’라고 하는데 따뜻한 바람이다(南風爲之麻卽景風)”고 했다. 이때 ‘마’(실제로는 마ㅎ)는 마파람에서 보듯 남쪽을 가리킨다. 뫼는 한자말 산(山)에 밀려난 배달말이니, 마뫼는 말 그대로 ‘남산’을 뜻하는 말이 된다.

‘목멱산’이란 딴 이름도 있다. ≪삼국사기≫(권 제18 고구려본기 제6)에 “(고국원왕 13년, 343) 가을 7월에 평양 동황성으로 왕이 거처를 옮겼다.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木覓山)에 성이 있다.”하고 적은 대목이 나온다. 신채호는 목(木)은 ‘마’를, 멱(覓)은 뫼를 적은 이두식 표기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자 멱(覓)은 ‘찾는다’는 뜻이지만 뜻과는 아무 관계 없이 [멱]을 소리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목(木)을 ‘나무, 나ᇚ’으로 뒤치고, 멱(覓)은 목 앞쪽을 뜻하는 배달말로 보면 ‘나무의 멱’ 아닌가. 나뭇가지 뻗어가는 쪽이 남쪽이니, 목멱산은 남산과 이어진다.

아, ‘앞산’을 ‘남산’ 말고 책상 안(案) 자를 쓴 ‘안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풍수지리 영향으로 생겨난 말이라고 하겠다. 말 그대로 마을 앞쪽에 책상처럼 있는 산이다.


#남산 #앞산 #마뫼 #목멱산 #동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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