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2022. 11. 11. 한겨레 그림판
<한겨레> 2022년 11월 11일치 신문 그림판을 보면 ‘케이 개그’라는 말이 나온다. 요즘 돌아가는 정치판을 잘 풍자했다. 무엇보다 ‘개그’라는 말이 절묘하다. ‘개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연극,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따위에서 관객을 웃게 하기 위하여 하는 대사나 몸짓. 「비슷한 말」 익살
우리가 흔히 아는 뜻이다. 개그, 개그맨, 개그우먼, 개그계 같이 쓴다. 하지만 이 말은 <일본어사전>를 그대로 베낀 뜻풀이에 가깝다.
ギャグ[gag](개그)
1. 演劇や映画で、本筋と直接関係なく客を笑わせるために入れるせりふや身振り「―を入れる」 (연극이나 영화로 단지 관객을 웃게 할 요량으로 끌어다 넣은 즉흥 몸짓. 「―를 넣는다」)
2. 冗談。しゃれ。「―が通じない」 (농담. 멋지다. 「―가 통하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개그’는 영어에서 온 말이지만 우리가 아는 개그라는 뜻은 일본식 영어였던 셈이다. 일본식 영어는 본디 말에 든 여러 가지 뜻 가운데 한 가지 뜻만 두드러진 의미로 쓰면서 뜻을 뒤틀어 버리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영어사전에서는 뭐라고 풀어놨나. <옥스퍼드 워드 파워 영영한 사전>(교학사, 2005)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gag1 [명] 1. a piece of cloth, etc that it put in or over sb’s mouth in order to stop him/her from talking. (사람을 침묵시키기 위해 입을 틀어막거나 입을 덮는 헝겊 등) 재갈. 2. a joke. 개그, 익살, 농담.
gag2 [동] ㉹ to put a gag in or over sb’s mouth.(어떤 사람의 입 속이나 위에 재갈을 물리다. …에게 재갈을 물리다, …의 언론을 억압하다.
어라, 우스갯말로 다른 사람을 웃기게 하는 일로만 알았지 영어권에서는 ‘재갈’이나 ‘재갈 물리기’란 뜻으로 쓰는 줄은 몰랐다. ‘재갈’이 뭔가? 말을 마음먹은 대로 부릴 요량으로 말 아가리에 가로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다. 여기에 굴레를 달고 다시 굴레에 고삐를 맨다. 여기서 뜻이 번져 소리 내거나 말을 하지 못하도록 사람 입에 물리는 물건을 일컫는다.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 같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일본식 영어 '개그'라는 뜻이 너무 널리 퍼져서 어쩔 수 없지만 영어권에서 쓰는 말뜻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쓰자.
여러 말 더 할 것도 없다. 부끄럽다. 지금 대통령실이 하는 짓거리는 어떻게 언론을 길들이고 재갈 물리기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참에 일본식 영어라는 탈을 벗고 본디 '개그'의 뜻으로 돌아가려고 했을까. 그랬다고 하면 손뼉 짝짝짝 쳐줄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나라를 우스운 꼴로 만드는 ‘케이 개그’일 뿐이니 과연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