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영어4: 콜라보는 어떻게 생겨난 말인가?
저쪽에서 5학년 아이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온다. 아이들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학교 선생으로서 특권이라고 하겠다.
“히야, 너네 둘이 정말 친한가 보네.”
“쌤, 우리 콜라보 하기로 했어요.”
아이 입에서 '콜라보'라는 말을 들으니 낯설고 거북하다. 살짝 심술이 나서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콜라보? 콜라보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어휴, 것도 몰라요? 같이 하는 거요.”
“아, ‘콜라보’가 같이 한다는 말이야? 첨부터 그렇게 말해줬으면 나처럼 딴 나라 말은 모르는 사람도 단박에 알아들었을 텐데, 하아, 아쉽다.”
“허얼, 정말 몰랐어요?”
“정말 몰랐지. 담부턴 같이 한다, 함께한다 같은 말로 해줄 거지?”
생각해보면 이런 말은 아이들 탓이 아니다. 음악, 미술,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신문, 방송에서도 다 ‘콜라보’라고 지껄여대니 아이들도 따라가고 말고다.
'콜라보'를 영어로 쓰면 ‘collabo’인데 본딧말은 '캘러버레이션'(collaboration)이다. ‘콜라보’라고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컬래버’로 적어야 한다.(물론 둘 다 우리 말 사전 올림말이 아니다.) 하지만 ‘콜라보’든 ‘컬래버’든 영어권에서 쓰는 ‘collabo’는 ‘적과 몰래 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음악적 협력’이라는 뜻이 뒤따라 나온다. 두 번째 뜻매김에서 보듯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의 줄임말은 ‘컬랩’(collab)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콜라보'는 일본식 영어인 ‘コラボ’(코라보)를 줏대 없이 따라간 말이다. 일본어 사전인 <디지털다이지센>을 찾으면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コラボ 코라보
[名] (スル) 「コラボレーション」の略。「명사」 (행위) ‘코라보레이숑’의 줄임말
コラボレーション 코라보레이숑 [collaboration]
[名] (スル) 異なる分野の人や団体が協力して制作すること。また、制作したものをもいう。共同制作。共同事業。共同研究。協業。合作。コラボレート。コラボ。
[명사」 (행위)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무언가를 함께 만들거나 만들어낸 것을 일컫는다. 공동 제작. 공동 사업. 공동 연구. 협업. 합작. 코라보레이트. 코라보.
말하자면 우리가 쓰는 '콜라보'는 일본 사람들이 영어 '캘러버레이션'을 뚝 잘라 '코라보'라고 하던 말을 따라 쓰는 셈이다. 일본말에서는 바깥에서 들어온 말을 자기들 입맛대로 뚝뚝 잘라 붙여 쓰는 특징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흔히 쓰는 말도 그 말밑을 캐보면 일본에서 만든 말이 수두룩하다. 'personal computer'(퍼스널 컴퓨터)는 '파스콘'(パソコン), 'air conditioner'(에어 컨디셔너)는 '에아콘'(エアコン), 'remote control'(리모트 컨트롤)는 '리모콘'(リモコン), 'animation'(애니메이션)은 '애니'(アニメ), 'digital camera'(디지털 카메라)는 '데지카메'(デジカメ)으로 쓴다. 이런 말을 우리 말 사전에서는 영어가 뿌리라고 해놨지만, 사실 죄다 일본식 영어 아닌가. 말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야 자연스러운 일, 그러니 일본식 영어라고 밝혀 주자.
퍼스널컴퓨터: 파스콘(パソコン ← パーソナルコンピューター 파스나루 코온퓨타)
에어컨: 에아콘(エアコン ← エア コンディショナー 에아콘디쇼나)
리모컨: 리모콘(リモコン ← リモートコントローラー 리모토 콘토로라)
애니메이션: 애니(アニメ ← アニメーション 애니메숑)
디지털 카메라: 데지카메(デジカメ ← デジタル カメラ 데지타루 카메라)
아파트: 아파토(アパート ← アパートメント 아파토만토)
영화: 시네마(シネマ ←シネマトグラフ 시네마토구라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