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도 중순이다. 바다 건너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물빛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달', '기러기 날아가는 달'이라고 했다. 우리 말로 달 이름을 붙인 달력들을 보면 첫눈을 기다리는 달이라고 그랬는지 '눈마중달'이라고 해놓았다. 11이라는 숫자를 가만히 보면 마치 잎을 다 떨구고 홀가분하게 선 두 나무처럼 보인다. 이때쯤 사무실 같은 데서 입기에 제격인 옷이 ‘카디건’(cardigan)이 아닐까 싶다.
‘카디건’(cardigan)은 영국 사람 이름이다. 1853년 제정 러시아가 흑해로 나아가려고 크림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세계로 나아가자면 무엇보다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가 러시아로선 절실했다.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여 크림반도를 빼앗는다. 그러자 오스만 제국은 서유럽 국가들 도움을 받아 크림반도를 되찾는데 이 전쟁을 ‘크림전쟁’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 영국군으로 참전한 카디건 백작(Earl of Cardigan)이 앞자락을 터서 단추로 채울 수 있도록 만든, 털로 짠 얇은 겉옷을 생각해 만든다. 전쟁통이라 재바르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장점에다 걸치면 따듯했던 까닭에 금세 퍼진다. 사람들은 카디던 백작이 만들어 즐겨 입던 옷이라고 해서 ‘카디건’이라고 했는데 차츰 옷 이름으로 굳었다. ‘바바리코트’처럼 카디건도 전쟁터에서 입을 요량으로 만든 옷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내남없이 즐겨 입는 옷이 되었다.
출처: 조선일보 1965.01.24. 5면 <「하이틴」의 의복 「가이드」>
‘카디건’을 사람에 따라 ‘가디간’이라고도 하고 ‘가디건’이라고도 한다.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1965년 1월 24일치 <조선일보> 5면에 '가디건'이라는 말이 처음 보이는데, 같은 신문 2월 21일치 5면에는 '카디건'을 스웨덴에 수출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으면 "카디건(cardigan)「명사」 → 카디건."이라고 해놓았다. 곧 '가디건'이 아니라 '카디건'으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짐작했겠지만 '가디건'은 일본식 영어로, '카디건'(cardigan)을 일본식으로 소리 내어 적은 ‘가디간’(カ―ディガン)을 생각 없이 따라 간 말이다.
그건 그렇고 크림반도는 다시 제 땅으로 삼으려는 러시아가 올해 일으킨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카디건은 크림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한 카디건 백작(Earl of Cardigan)이 만든 털로 짠 겉옷이다. (지도 출처: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