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골, 덕실, 덕곡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75)

by 이무완

‘덕골’이란 마을엔 어질고 너그러운 사람들만 살 것 같다. 동해시에도 덕골이란 데가 있는데, 동해웰빙스포츠타운에서 천곡동굴 앞까지 죽 이어진 골짜기요 마을을 가리킨다.

본디 ‘덕실’이었는데 한자로 적으면서 ‘덕곡’(德谷)이 되었고, 덕곡에 이끌려 ‘덕골’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알다시피 ‘실’은 마을이나 골을 가리키는 신라말 흔적이니 ‘덕실=덕골=덕곡’이라는 대응은 누구라도 고개 끄덕일 만하다.

문제는 ‘덕’이 대관절 무슨 뜻으로 붙인 말이냐는 데 있다. 덕골을 쓴 덕(德) 자의 새김은 ‘크다’이다. 요즘은 내남없이 ‘덕 덕’이라고 새기지만 ≪훈몽자회≫(1527)를 보면 ‘큰 덕’으로 나온다.

큰덕클인.jpg ≪훈몽자회≫(최세진, 1527)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덕적도(德績島)란 섬이 있다. 이 섬을 덕물도(德勿島, 德物島), 득물도(得物島), 인물도(仁勿島), 수심도(水深島)라고 했다. ≪용비어천가≫에 덕적(德積)은 ‘덕물’이라고 적었고, 클 인(仁) 자를 써서 인물도(仁物島·仁勿島)라고도 적었는데 모두 본디 이름인 ‘큰물섬’을 한자로 적으면서 생겨난 섬이름이다. 오늘날에도 덕적도를 ‘덕물도’나 ‘큰물이’라고 한다.

덕물도가 아니라도 배달말에서 ‘덕’은 ‘크다, 높다’는 뜻으로 썼다. 가령, ‘덕’은 널이나 막대기 따위를 나뭇가지나 기둥 사이에 얹어 만든, 높은 시렁이나 선반을 말하면서 동시에 ‘더기’의 준말로서 높은 데 있는 평평한 땅을 가리키기도 했다. 또 ‘언덕’은 땅이 좀 높게 비탈진 곳을 말하고, ‘덕땅’은 둘레에 있는 땅보다 높으면서 펀펀한 땅을 말한다. ‘덕장’은 생선 따위를 말릴 요량으로 ‘덕’을 매어놓은 것이다. 시쳇말에 ‘떡대가 좋다’라는 말도 있다. 몸집이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사람을 낮잡아 ‘떡대’라고 한다. 이 떡대의 말밑도 알고 보면 ‘덕대’(德대)다. 이들 말에서 보듯 ‘덕’은 ‘높다, 크다’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골은 ‘큰 골’이라서 붙은 이름일까, ‘언덕진 데 있는 마을’이라서 붙은 이름일까. 이럴 때는 땅 모양이나 마을 앉음새를 살펴야만 한다.

덕골.jpg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낸 ≪조선지형도≫에 보면, 집들은 오늘날 동해천곡주공5차아파트와 천곡초등학교, 북평여자고등학교가 있는 쪽으로 길쭉하게 늘어 있다. 마을 앞으로는 도랑이 흘렀고 도랑 건너 앞산은 가파른 벼랑이다. 이 절벽을 ‘갈병’이라고 했다. 갈병 위쪽으로는 산 등마루를 따라 돌리네가 있어서 우묵하게 꺼진 데가 여럿 보인다. 이런 데를 지역 말로는 ‘굼’이라고 했다.

결국 보는 눈길에 따라 마을 이름이든 골짜기 이름이든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골이 길다고 ‘긴골’(장곡), 골이 좁으면 ‘좁은골’(조비곡, 소곡), 넓으면 ‘너른골’(광곡), 크면 ‘큰골’(대곡, 한곡, 덕곡), 샘이 나면 ‘샘골’(천곡)이 되는 식이다. 덕골은 골이 크고 깊다 해서 붙은 이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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