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78)
사문재에서 묵호 시내 쪽으로 250여 미터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난 산길을 우불렁구불렁 오르면 창호초등학교에 이른다. 이 학교 교가는 “동문산 기슭가로 피는 꽃같이 새로운 전설의 꽃을 피우자”로 시작한다. 창호초등학교 뒷산이 오학산(215.7m)이고, 남쪽으로 우뚝한 산이 동모산(151.3m)이다. 동문산은 오학산 산줄기가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다 창호초등학교 남쪽에서 살짝 오른 듯한 생김새다. 2023년 동문산 북쪽 산기슭에 강원교육과학정보원 동해분원이 들어섰지만 그 자리도 본디 창호초등학교 부지다. 동문산에 오르면 동해바다뿐만 아니라 묵호 시내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그러면 동문산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더러 이 산 기슭에 학교가 있으니 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 곧 동문(同門)이 산 임자라서 붙은 이름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창호초등학교가 지금은 7학급(특수 1학급 포함)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학교이지만, 한때는 46학급에 이를 만큼 매우 큰 학교였다. 암만 그래도 산 임자가 이 학교 졸업생이라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은 말재기들이 지어낸 말일 뿐 썩 믿을 만한 말은 아니다.
≪동해시 지명지≫(2017, 107쪽) 설명은 이렇다.
당재봉 아래쪽에 위치한 산봉우리. 이 산의 정상에 창호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봉우리의 생김새가 여인이 어린 아이를 밴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일명 동모봉(童母峰)으로 부른다. 이 산을 경계로 하여 발한동과 사문동이 갈린다.
이 산을 달리 ‘동모산’이라고 한 데서 실마리를 찾아 더듬어 가 보자. 먼저 ‘당재봉’은 ‘오학산’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이 산의 정상에 창호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학교는 산 정상이 아니라 산 기슭에 있다고 보아야 옳기 때문이다. 봉우리가 마치 아이 밴 어머니 배처럼 보인다는 설명은 산 모양이 둥그스름한 탓에 얼마든지 그렇게 볼 만하다. ‘아이를 밴 여인’이라면 ‘임부(妊婦)’나 ‘모자(母子)’, ‘자모(子母)’를 쓰거나 ‘엄마’ 같은 말이면 한결 알기 쉬울 텐데 굳이 아이 동(童) 자, 어미 모(母) 자를 써서 ‘동모산’으로 했는지 고개를 삐끗 꼬게 된다.
≪조선지지자료≫에 보면 망상면 발한리에 ‘모산’(牟山)으로 쓰고 ‘보리뫼’라고 적은 대목이 있다. 다름 아닌 ‘동모산(동문산)’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잘 알다시피 보리는 볏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쌀 다음으로 치는 곡식이다. 그래서일까, 배달말에 보리윷, 보리장기, 보리바둑 같은 말이 있다. 이때 ‘보리-’는 서툴다, 모자란다, 뒤처진다, 낮다는 뜻을 보탠다. 지역말에 ‘보리경조’란 말도 있는데, ‘서툰’ 서울말투를 놀릴 때 쓰는 말이다.
내 생각이지만 동모산은 아마도 오학산에 대면 야트막한 산봉우리라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면 동모산은 아이 밴 어머니를 닮은 산이 아니라 오학산에서 뻗어 나온 작은 산이라서 ‘보리뫼’(모산)라고 했고 그 뜻을 담아 ‘보리(童)-오학산(母)’으로 생겨난 땅이름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오학산(당재봉)에 견줘 작은 산이라서 ‘보리뫼’라고 했고 ‘보리뫼’를 한자로 적으면서 ‘모산’이 된다. 그런데 ‘모산’만으로는 어느 산인지 온전히 가리키기 어렵다고 여겨 ‘어리다’을 뜻하는 말을 덧대어 ‘동모산’이 되었고, 그뒤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동모’가 ‘동문’으로 소리바꿈하지 않았을까 싶다. 배달말은 뿌리가 같아도 뜻 바뀜에 따라 조금씩 소리를 달리하면서 여러 가지 말을 만들어낸다. 가령, 땅이나 산을 뜻하는 ‘달’만 해도[달, 덜, 들, 돌, 뜰, 다리, 다락, 더리, 드리……] 같은 소리로 바뀌면서 뜻이 갈라진다.
보리윷 법식도 없이 아무렇게나 던져서 노는 윷을 낮잡아 이르는 말.
보리장기 법식도 없이 아무렇게나 두는 서투른 장기를 낮잡아 이르는 말.
보리바둑 법식도 없이 아무렇게나 두는 서투른 바둑을 낮잡아 이르는 말.
보리동지 (1)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얻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2) 조금 둔하고 숫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보리저녁 해가 지기 전의 이른 저녁. 보리밥은 보통 두 번을 삶아서 짓기 때문에 보리쌀을 일찍 안쳐야 하는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