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권세 있는 사람들이 내남없이 두루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유감’이다. 깊은 유감, 심심한 유감, 유감을 표한다, 유감의 뜻을 표한다, 유감을 느낀다, 유감스럽다 같이 배배 꼬아 말한다. 사과한 듯 사과하지 않은, 사과가 아닌 말이다. 다음은 강원도교육청 간부 A씨가 학부모 대상 연수에서 한 말들이 입길에 오르자 도교육청에서 내놓은 말이다.
교육청 간부가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교사를 모욕하거나 폄훼할 의도는 없었으나 발언 중에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말을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히려 모욕하거나 낮잡을 마음은 병아리 눈곱만큼도 없는데 잘못 알아들은 쪽이 칠뜨기라서 오히려 도교육청이 더 섭섭하다고 떠드는 꼴이다. 무엇보다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면’이란 말은 조금도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는 ‘유감’의 뜻매김은 이렇다.
유감(遺憾)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여감.
한자로 보면 남길 유(遺) 자, 서운할 감(憾) 자다. 섭섭함이나 서운함이 남았다는 말 아닌가. 잘못을 인정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될 말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뭉개고 피하려고 유감이란 말을 쓴다. 잘 알다시피 구저분하고 두루뭉수리한 이 말을 끌어다 쓰길 즐기는 것으론 일본 간나위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생각난 김에 일본에서는 ‘유감’으로 쓰고 ‘사죄’로 읽는지 찾아보았다. ≪실용일본어표현사전≫에 ‘유감’의 뜻을 풀어놨는데 내 짐작하고 그닥 다르지 않다.
유감(遺憾, いかん)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결과가 기대와 어긋났을 때 불만이나 분한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주로 공식 자리에서 쓰며, 자기 의견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한테 전할 때 쓴다.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는 말은 불만스런 마음이나 적의를 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또, ‘유감의 뜻을 보인다’는 말은 무엇보다 정치나 경영 분야에서 자주 쓰며 공식의 뜻이나 항의 표현으로 쓸 때가 많다. ‘유감’이란 말은 대체로 좋지 않은 뜻으로 쓰며, 이 말이 얼마나 강한 뜻인지는 맥락이나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2023. 10. 26., https://gw1.kr/_0aLQ)
일본 말에서도 불만스런 마음이나 분한 마음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지 사과의 뜻으로 읽지 않는다. 듣자니 유감이든 사죄든 사과든 그깟 말 한마디가 아니라 말에 담긴 마음이 중요하지 않냐고 대개 방귀깨나 뀐다는, 잘난 사람들을 편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과연 어디서 나오는가. 다름 아닌 마음이다. 마음에 없기 때문에 ‘유감’이라는 알쏭달쏭한 몹쓸 말로 얼버무린다.
<강원도민일보> 2024. 7. 16.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