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5)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따라 나 여기 왔나
<정선아리랑> 한 대목이다. 전하는 말로는 정선군수로 부임하는 오횡묵을 따라온 부인이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산 많고 골이 깊은 산간벽지니 오죽했을까. 여기에 ‘성마령’과 함께 ‘꽃베루’란 땅이름이 나온다. 부임 때 가마를 타고 정선으로 오는데 정선 어귀에 이르러 성마령을 넘고 꽃베루를 지났다면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하지만 오횡묵 일행은 ‘성마령’, ‘꽃베루’가 아니라 ‘마전령(비행기재)’, ‘관음베루’로 해서 정선 관아에 닿는다.
‘꽃베루’는 ≪조선지형도≫(1917)를 보면 ‘화현(花峴)’이라고 나오고,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花峴 ㅅ곳베루’로 적었다. 이때 ‘베루’는 ‘벼루’가 아니라 ‘벼랑’을 가리킨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72쪽)에서는 ‘꽃베루’란 이름 유래를 다음과 설명한다.
꽃베루의 ‘꽃’은 ‘곧’이 변한 말로 꽃베루는 ‘곧은 절벽’이라는 뜻을 내포해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지형’이나 시간적으로 미래를 뜻하는 부사형으로 ‘가도 가도 끝없는 곧은 언덕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명에 종종 접두어로 등장하는 ‘꽃’은 ‘곧은’이라는 뜻의 ‘곧’과 ‘불뚝 튀어나간’이라는 ‘곶’이 변한 것이며, ‘베루’는 ‘강이나 물을 낀 벼랑’의 사투리다. 따라서 지형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꽃베루’를 ‘꽃이 핀 산길’로 보는 것은 옛말을 간과한 해석이 된다.
꽃베루는 여량면 여량리와 북평면 장열리 사이에 있다. 이 같은 해석은 그 뒤에 나온 ≪정선 여량면 지명유래≫(여량면, 2010, 99쪽)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전하는 말로는 언제적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느나, 오횡묵 부인이 꽃베루를 지나다 탄식을 하자 군수가 나졸에게 정선읍내까지 아직 멀었냐고 물었고 나졸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답한다. 하지만 가도 가도 벼룻길이 이어지자 군수가 또 묻는데 나졸인지 구실아치인지 “곧 베루가 끝나요.” “곧 베루가 끝나요.”하고 대답했다고 해서 ‘곧베루’가 ‘꽃베루’로 되었다 한다. 이 전설에 기대어 꽃베루의 ‘꽃’은 ‘곧’에서 온 말로, “시간적으로 미래를 뜻하는 부사형으로 ‘가도 가도 끝없는 곧은 언덕길’이라는 뜻”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나치게 지어낸 느낌이 든다.
참고로, 오횡묵은 조선 고종 24년인 1887년 정선군수로 부임한다. 한양을 떠나 양평, 원주, 횡성, 평창을 지나 정선까지 오는데 이레가 걸렸다. 그런데 정선 어귀에 있는 마전령은 말도 가마도 타지 못해 네 발 짐승처럼 기어 숲길을 헤치고 왔다고 한다. 올 때는 너무 절망스러워 눈물을 흘렸지만 떠나갈 때는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횡묵은 1887년 3월부터 1888년 8월까지 1년 반 정도 정선군수로 지내면서 일기처럼 쓴 ≪정선총쇄록≫을 남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꽃베루는 언제 무슨 일로 지났을까. 여량리와 장열리 사이에 있는 꽃베루는 한양에서 오는 길하고는 거리가 멀다.
1872년 <지방지도>를 보면, 여량에서 관아가 있는 정선읍내까지 가는 길은 ‘여량-꽃베루(花迂)-이곡-장열-반점치’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선지형도>(1917)를 봐도 여량에서 장열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인데 하나는 조양강 물줄기를 따라 꽃베루를 에돌아 가는 좁은길이고 다른 하나는 꽃베루를 넘어 이곡(梨谷)을 따라가는 큰길이다. 오횡묵 군수가 여량 쪽에서 무슨 일로 꽃베루를 넘었는가 모르겠지만 부인과 함께 가마를 타고 갔다면 에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꽃베루를 넘는 길로 갔을 것으로 짐작한다. ‘가도 가도 끝없는 곧은 언덕길’은 오히려 꽃베루에서 이곡(梨谷)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겠다.
땅모양을 보면 남산(959m) 줄기가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와 조양강으로 뻗어나온 곳이 바로 꽃베루(510m)다. 지금은 옛 고갯길 아래로 42번 국도가 지나는 ‘여량터널’이 생겨 장열리와 여량리를 곧장 잇지만 조양강 물줄기를 따라 꽃베루를 휘돌아가거나 곧장 넘는 수밖에 없다. 꽃베루는 벼랑에 눈길을 준 이름이고 땅 모양새로 보면 조양강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땅이다. ‘곶’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옛말에서 ‘곶’은 ‘꽃’을 뜻하는 ‘곶’과 소리로나 글자로나 같은 까닭으로 한자로 뒤칠 때 곧잘 ‘화(花․華)’로 둔갑한다. 땅이름에서 ‘곶’은 꽃, 꼬치, 고지, 구지 따위로 나타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꽃베루에서 가까운 장열리에 ‘꽃밭재’도 ‘곶’에서 말미암은 땅이름이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71쪽)에 ‘꽃밭재’의 이름 유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음골 일대 산으로 예전에 돌무더기 곳곳에 진달래가 많이 피어 생긴 이름이다. 옛날 장열마을에서는 꽃밭재 진달래나무 숲에 참꽃문둥이가 산다고 하여 봄철 진달래가 필 때는 어린이들을 산에 가지 못하게 말렸다. 얼굴이 뽀얀 문둥이가 진달래꽃을 먹고 사는데 어린이들이 다가와 꽃을 따면 잡아서 간을 내어 먹는다고도 했다. 아마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위함한 산에 함부로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진달래가 많이 피어나어 꽃밭을 이루는 산등이라고 해서 ‘꽃밭재’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 땅 모양을 보면 산줄기가 삐죽하니 곶처럼 밀고 나온 곳이다.
정선읍 이슬재골과 삼거리로 올라가는 골 사이에 있는 산등은 ‘꼬치재’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36쪽)은 꼬치재가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이렇게 말한다.
이슬재 북쪽에서 산자락이 남동쪽 양지뜰 쪽으로 길게 내려온 곳으로, ‘꼬치’는 ‘산기슭이 불쑥 튀어나온 곳’을 말하는 ‘곶(串)’이 ‘고지’로 변해 ‘꼬치’가 되었고, ‘고개’를 뜻하는 ‘재’가 더해진 말이다.
‘이슬재’를 한자로 ‘노치(露峙)’라고 했다. 잿마루가 느릿하게 늘어진 곳이라고 해서 ‘늘치/늘재’, ‘널치/너재’, ‘노치/노재’라고 하다고 이슬 로(露) 자를 써서 ‘노치’라고 했고 오늘날에 와서 한자 뜻으로 뒤쳐 ‘이슬재’로 이름이 바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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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길 낭떠러지를 끼고 난 길.
벼랑길 벼랑에 난 험하고 좁은 길.
에움길 굽은 길. 에워서 돌아가는 길. =돌림길. [뜻이 맞서는 말] 지름길.
등판길 평평하고 너른 산등성이에 난 길
안돌잇길 험한 벼랑에서 바위 같은 것을 안고 겨우 돌아가게 된 길.
지돌잇길 험한 벼랑에서 바위 같은 것에 등을 대고 겨우 돌아가게 된 길.
고팽이 비탈진 길의 가장 높은 곳. 굽은 길의 모퉁이.
돌너덜길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
벼룻길 아래가 강가나 바닷가로 통하는 벼랑길.
서덜길 냇가나 강가 따위에 나 있는, 돌이 많은 길.
자드락길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