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7)
정선읍 신월리에 ‘와평(瓦坪)’ 마을이 있다. 기와로 지은 집이 많은 까닭에 ‘기와 와(瓦)’, ‘들 평(坪)’ 자를 써서 ‘와평’이 되었다고 전한다. 한자 뜻으로만 풀면 ‘기와들’이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168쪽)를 보자.
마을 노인들은 ‘왜평’이라 부르기도 한다. 와평에서 다리를 건너 현재 요양원이 있는 초입에도 기와를 굽던 터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부터 와평은 6백마지기의 논이 있었다고 할 만큼 부촌으로 오래 전 여자들이 쌀밥을 먹기 위해서는 와평으로 시집을 가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오횡묵(吳宖黙) 정선군수의 ≪정선총쇄록(㫌善叢瑣錄)≫에도 ‘밭과 논이 반반’이라고 나와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기와집이 많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개보수하거나 철거하면서 몇 채 남아 있지 않다.
와평을 ‘기와들’이라 한 까닭은, 이 마을이 예부터 정선에서 손꼽히는 부촌이었고 기와를 굽던 터까지 있었다는 사실에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잘사는 마을이었다면 집집마다 기와지붕을 올렸을 만도 하다. 다만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정할 때는 대체로 주변 산·강·내·바위·숲 같은 자연환경을 살펴 따르며, 말하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고른다. 그런 점을 생각해 정말로 기와집이 많았다면 ‘기와골’이나 ‘기와말’ 같은 이름이 더 자연스러운데 어째서 ‘기와들’이라 했을까 하는 물음이 자꾸 든다. 어쩌면 지금 전하는 유래가 실제 땅이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1910년대 <조선지형도>를 보면, 와평 마을은 철미산 줄기가 길게 남쪽으로 뻗어간 끝을 휘감듯 동쪽에서 흘러 들어온 어천(漁川)이 북쪽으로 흘러가면서 그 가장자리에 널찍하게 생겨난 평평한 곳이다. 마을 뒤로는 산이 있고 비탈이 서쪽으로 늘어지면서 천천히 낮아지는 데 집들이 산기슭을 따라 앉았다. 마을 앞은 들이고 들 건너로 내(어천)가 흐른다.
내 생각이지만, ‘와평(瓦坪)’은 동쪽을 막아선 산줄기가 서쪽으로 느리게 흘러 내려와 평평한 땅을 이룬 곳이라고 해서 ‘늘들’이라고 했고 이 말이 ‘눌들’을 거쳐 ‘눌평(눌坪)’이 되었을 수 있다. 그뒤 ‘눌’마저 누울 와(臥)로 뜻소리 적기를 하면서 ‘와평(臥坪)’으로 둔갑하지 않았나 싶다. 마을 앞을 흐르는 어천(漁川)이나 마을 동쪽 산 너머에 있는 어치(於峙)도 알고 보면 ‘늘어진다’의 말줄기인 ‘늘-’을 받아적은 땅이름이다. 그런데 ≪정선총쇄록≫에서 “밭과 논이 반반”이라고 할 만큼 정선 고을에선 나름 살기좋은 곳인데다 마을에 ‘기와집’이 늘어나면서 말 그대로 ‘기와골’이 되었고, 같은 말이면 잘사는 마을을 뜻하는 ‘와평(瓦坪)’으로 뜻바꿈한 듯하다.
한편, 조금 다른 생각이지만, 마을 앉음새로 보면 산으로 빙 둘러싸인, 우묵한 곳에 마을이 있다. 성처럼 둘러싼 산을 가리켜 옛말로는 ‘잣’이나 ‘재’라고 했다. 한자 성(城)을 ‘재 성, 잣 성’으로 새기다 보니 뜻가름이 흐리터분해진 탓도 있겠다. 애초 산으로 둘러싸인 들이라는 뜻으로 ‘잣(재)+에+들’처럼 썼는데, 이 말이 ‘재에들’처럼 되면서 ‘기와’를 뜻하는 지역말 ‘지와, 재에’와 어금지금해지면서 한자로 ‘와평(瓦坪)’이 되었을 여지도 있다.
우리 나라는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다. 그 가운데 정선은 산이 아닌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 대부분 산지다. 중산악 지대(500~1,000m)가 43.4퍼센트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1,000m 이상 고산지대도 7.7퍼센트에 이른다. 자연히 어디를 가든 언덕지고 비탈진 데다. 비탈은 산이나 언덕 따위가 기울어진 상태나 정도 또는 그렇게 기울어진 곳을 가리킨다. 같은 비탈이라도 몹시 가파른 비탈은 ‘된비알, 된비탈, 가풀막’이라고 하고, 돌이 여기저기 흩어진 비탈은 ‘돌너덜, 너덜, 너덜겅’이라고 한다. 떨기나무, 칡덩굴 따위와 억센 잡풀이 우거지고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은 ‘너덜밭’이라고 한다. 산비탈이 느릿해지는 아랫부분은 ‘멧기슭, 산기슭’이라고 한다. 산기슭과 맞닿은 물가에 있는 금모래층(사금층)은 ‘코쇠’라고 하고, 한쪽에만 모여 있지 않고 고루 퍼진 금모래층(사금층)은 ‘판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