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연판장(連判狀)을 찾으면, ‘연판한 서장(書狀)’이라고, 정말이지 시시펑덩하게 풀어놨다. 연판이 별건가. 저마다 자기 이름을 쓰고 도장이나 손도장, 피로써 함께한다는 뜻을 드러내는 일이다. 익명에 숨지 않겠다는, 자기 이름 드러내기다.
예부터 연판장은 아래서부터 바꾸자는 목소리를 내려고 쓴다. 자연히 권력의 뜻에 거슬리는 까닭에 어떻게든 불순한(?) 주동자를 가려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려고 했다. 그런 까닭에 누가 주동자인지 알 수 없게 이름을 둥그렇게 쓴 연판장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동학농민혁명 때 사발을 엎어 그린 원을 중심으로 함께한 수더부레한 사람이 둥그렇게 자기 이름을 적은 ‘사발통문’이 연판장 아닌가.
이런 일들이 지금이라고 없을까. 가까운 보기로 여당 대표 경선에 나선 한 아무개 후보를 주저앉힐 요량으로 후보 사퇴 요구 기자회견을 여러 사람 이름으로 준비했다가 흐지부지한 일이 있다. 지난해엔 대통령 친위부대를 마다하지 않는 초선의원 마흔여덟이 연판장을 돌려 당 대표에 나서려고 마음먹은 나 아무개 의원을 눌러 앉힌 일도 있다.
싸우고 지지고 흰소리 치기 좋아하는 양반들만 연판장을 돌리는 게 아니다. 내 보기에 국회 ‘국민 동의 청원’만한 연판장이 또 있을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연판장엔 약 143만 시민이 동의했다. 내일이 마감이다. 그 바로 옆에 보니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반대에 관한 청원’ 연판장도 있다. 여기엔 9만 8101명이 동의했다. 암튼 연판장 뒤끝이 자못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