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줄기가 휘감아 지어낸 땅, ‘물굼’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7)

by 이무완

정선군 북평면 문곡리는 조양강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 문곡리 중심 마을인 본동을 가리키는 옛 이름은 ‘물굼’이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130쪽)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강물이 감입곡류하면서 형성된 땅을 ‘굼’이라고 하는데, 조양강 물길이 휘돌아 형성된 땅이라고 해서 ‘물굼’이라 하였다. 이 말이 변해 ‘물구미’ 또는 ‘물금’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강변 지명의 ‘금’은 대개 ‘굼’에서 나온 말로, ‘구미’로 바뀌어 나타나기도 한다.


‘물굼’이라는 이름은 땅모양에 그대로 드러난다. 냇줄기가 골짜기를 파고 굽이쳐 흐르면서 물굽이 안쪽에 생겨난 땅을 가리켜 ‘물굼’이라 했다. 1910년대 초에 조선총독부에서 낸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이 마을을 ‘文谷里 물굼’으로 적었다.

문곡.jpg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물굼’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구실아치가 소리를 엇듣고 잘못 적었을 수도 있지만, 같은 소리라면 뜻이 좋은 글자를 골라 쓰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끼어들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물’을 ‘문’으로 옮겨 적은 보기는 정선군 안에서도 여럿 보인다. 가령, 임계면에 있는 ‘문래산(文來山)’은 ‘물내산’에서 말미암은 이름이고, 정선읍 덕우리와 남면 무릉리에 있는 ‘문안골’은 ‘물안골’에서 왔다.


‘굼’은 사전에 오르지 않은 지역말이지만, 구녕(구영), 궁기, 구미처럼 뜻과 소리가 닮은 친척말이 여럿 있다. 묵밭굼, 달밭굼, 뱃굼, 둠벵이굼에서 보듯 ‘굼’은 대개 땅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산에 둘러싸인 구석진 논밭이나 우묵하게 꺼진 분지를 가리킨다. 이는 옛말 ‘구무/구ᇚ(穴)’의 흔적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문곡 마을 땅 모양을 보면, 조양강이 북서쪽에서 흘러와 마을 남쪽을 휘돌아 북동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모습은 남산(959m)에서 뻗은 산줄기가 남쪽으로 쑥 밀려 나온 ‘곶’으로 보아도 어색하지 않다. 눈길을 산줄기보다 물줄기 흐름으로 돌려서 보면 이곳은 강물이 휘감아 들어와 생겨난 ‘굼’으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문곡은 산보다는 물 흐름에 기대어 이름이 붙은 마을이다. ‘물굼’이라는 옛 땅이름은 조양강이 굽이져 흐르면서 만들어낸 땅의 특성을 말로써 붙잡아 두려 한 옛사람들 삶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배달말 한입 더

굼슬겁다 성질이 보기보다 너그럽고 부드럽다.

굼튼튼하다 성격이 굳어서 재물에 대하여 헤프지 아니하고 튼튼하다.

굼닐다 몸이 굽어졌다 일어섰다 하거나 몸을 굽혔다 일으켰다 하다.전체 보기

굼뜨다 동작, 진행 과정 따위가 답답할 만큼 매우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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