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과 골짜기 사이, 정선의 ‘탄’ 이야기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27)

by 이무완

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개울’이라 하고,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한다.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원호가 지은 시조에 “간 밤의 우던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여울’은 옛말 ‘여흘’에서 왔다. 한자로는 여울 탄(灘)을 쓴다. 반대로 물이 모여 천천히 흐르거나 고여 머무는 자리는 소(沼)나 연(淵)이라 했다.

여울과 골짜기.jpg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가탄, 광탄, 월탄(달탄), 벽탄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여울 가에 있는 마을, 가탄

정선읍 가수리에는 ‘가탄’이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2012, 364쪽)에 따르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이 아름다워 ‘가탄’이라 했다고 하지만, 가장자리를 뜻하는 옛말 ‘갓’ 소리를 한자로 받아적으면서 아름다울 가(佳) 자를 써 ‘가탄’이 되었다고 한다. 송천과 골지천이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을 이루어 가수리에 이르면 지장천과 만나 동강이 된다. 그 물줄기가 가탄 마을 앞을 흐른다. 이름에는 물 가장자리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넓은 여울이 있는 마을, 광탄

정선군 남면 광덕2리 중심 마을인 ‘광탄’은 본래 ‘너븐여울’이라고 했다. 마을 앞 여울을 마을 이름으로 삼은 셈인데, ‘너븐여울’을 한자식 이름으로 뒤치면서 넓을 광(廣), 여울 탄(灘)을 써서 ‘광탄’이 되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지장천은 북쪽 삼종리와 남쪽 송오리 사이 느릿하게 늘어진 땅을 가로지르며 여울을 이룬다. 이곳에서 ‘탄’은 물살과 땅이 빚어낸 여울을 가리킨다.


높은 데를 스쳐 흐르는 여울 마을, 달탄

임계면 용산리 중심 마을인 ‘달탄’은 ‘월탄’이라고도 한다. 골지천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 흐르며 너른 들을 이룬 곳이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2011, 235쪽)는 ‘달’을 들판을 뜻하는 옛말 ‘다ᆞ갈’로 보고, 이를 뜻소리로 적으면서 달 월(月) 자를 써 ‘월탄’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月灘里’라 적고 한글로 ‘달탄’이라고도 썼다. 1958년 개교해 1999년 문 닫은 임계초등학교 월탄분교 이름도 여기서 땄다. ‘달탄’은 ‘達灘(달탄)’으로 적은 옛기록도 보인다. ‘달(達)’은 고구려나 백제 땅이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달을성→ 고봉, 달홀·달함→ 고성, 달을참→ 고목근’에서 보듯 ‘달’을 앞자리에 놓았을 때는 ‘높다’는 뜻으로, ‘아사달(금미달)→ 홀산, 오사함달→ 토산, 석달→ 난산, 가지달→ 청산’에서 보듯 끝자리에 썼을 때는 ‘산’으로 바뀐다. 이를 고려하면 ‘달탄’의 ‘달’은 ‘들’보다는 ‘높은 곳’으로 해석할 때 더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달탄은 ‘높은 지대를 스쳐 흐르는 여울’로 보아야 한다.

‘가탄’도 ‘광탄’도 ‘달탄’도 땅이름을 들으면 아, 하고 고개 끄덕여지면서 환해지지만, 정선읍 ‘벽탄(碧灘)’에 오면 어째서 벽탄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벽탄, 벼랑 사이에 낀 골짜기 마을

백여 년 전만 해도 벽탄은 역이 있던 곳이다. ‘벽탄-호선(정선 읍내)-여량-고단’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오늘날 벽탄초등학교 옆 옛 보건소 앞에 있었다. 벽탄역엔 역장이 있고 역졸과 둔전을 살피는 역노비가 있었다. 역장은 정6품 벼슬아치인 찰방이었다. ≪정선읍 지명유래≫(2012)는 마을 앞 경금산의 가파른 절벽 아래로 조양강이 굽이돌아 흐른다고 해서 ‘벽탄’이라 했다고 설명한다. ‘여울’이 있는 마을로 보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벽탄역(碧呑驛)’으로 적었는데, 여울 탄(灘) 자가 아닌 삼킬 탄(呑) 자를 썼다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옛 땅이름에서 ‘탄(呑)’은 ‘단(旦), 돈(頓)’과 함께 골짜기를 뜻하는 고구려말 흔적이다. 신라 경덕왕 때 땅이름을 한자식으로 고치면서 ‘탄’은 대부분 ‘곡(谷)’으로 바뀐다. 이를테면 어지탄은 익곡으로, 습비탄은 습비곡으로 된다. 벽탄 동쪽 산길을 넘으면 생탄(生呑, 牲呑)이란 곳이 있다. 이곳도 냇줄기와는 사뭇 거리가 먼, 골짜기 사이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생탄을 ‘사시란’이라고도 하는데 ‘삿실(사잇실)’이 ‘사실’이 되고, 여기에 ‘안’을 보태 골짜기 사이에 쑥 들어가 있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 말하자면 생탄은 사잇골 비슷한 뜻으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여탄(余呑)도 강이나 내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이다. 여(余)는 땅이름에서 너르다는 뜻을 나타내는데 여탄은 너른 골로 뒤쳐 생각할 수 있다. 암튼 이들 땅이름에서 ‘탄’은 ‘골’을 뜻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벽탄의 ‘탄’도 여울이 아니라 골짜기로 보아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앞엣말 ‘벽(碧)’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가 남았다. ‘파랄(碧)’은 ‘벼랑’이나 ‘비알’을 받아 적은 말로 보아야 한다. 평창에서 정선으로 넘어오는 벽파령(碧波嶺)을 ‘벨패령’이라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벽’은 ‘베랑’이 줄어든 말로 볼 수 있다. 결국 벽탄은 ‘벼랑 사이에 낀, 골짜기 마을’이다.


탄(灘)과 탄(呑), 뿌리가 다르다

여울을 뜻하는 ‘탄’과 골짜기를 가리키는 ‘탄’은 소리값이 같지만 말 뿌리는 아주 다르다. 가탄, 광탄, 달탄은 산과 산 사이를 물길이 굽이져 흐르면서 빚어낸 여울의 이름이라면 벽탄은 벼랑이 있는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을 담았다. 이처럼 산과 강과 들에 사람이 깃들어 살면서 알게 된 땅의 속살을 땅이름으로 기록해 전한다. 곧 땅이름은 그 땅의 기억이다.


(파랄’처럼 붉고 굵은 글자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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