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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골, 고마밑골엔 곰이 살았다고?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 고마골, 고무골, 고마밑골

by 이무완

땅이름에 깃든 곰의 흔적

우리에게 곰은 친숙한 동물이다.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는 두말할 것도 없고 공주 곰나루(웅진) 전설을 마치 있던 일처럼 여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반달가슴곰을 상징으로 삼는다. 설악산과 오대산, 태백산처럼 우렁우렁한 산이 많은 곳이니 곰을 신성하게 여기고 토템으로 삼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귀결로 땅이름 곳곳에도 곰 흔적이 깃들어 있다.

동해시에도 ‘곰’과 관련한 땅이름이 여러 곳이다. ≪동해시 지명지: 증보판≫(동해시문화원, 도서출판청옥, 2017)를 보자.


복굼밑골의 동쪽 능선 너머의 골짜기를 가리킨다. ‘고마’는 곰의 옛말로서 15세기 중엽의 문헌에서도 쓰였다. ‘곰+밑+골’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78쪽, 망상동 ‘고마밑골’)


옛날 이 곳에 곰이 살았다는 데에서 붙은 이름이다. 곰의 옛말이 ‘고마’였으므로 고마골의 ‘고마’는 옛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곰+아+골’의 구조로서 곰의 골짜기를 뜻한 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141쪽, 비천동 ‘고마골’)


옛날 곰이 이곳에서 살았던 데에서 붙은 이름이다. 현대어 ‘곰’의 옛말은 ‘고마’인데 이것이 직접 골짜기에 붙은 지명으로 추정된다.(159쪽, 신흥동 ‘고마골’)


골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현대아파트가 있는 곳. 딸밭굼이 남쪽이 되는데, 옛날 이곳에서 곰이 겨울을 지냈다는 데에서 붙은 이름이라 본다.(266쪽, 천곡동 ‘고마골(고ː무골)’)


그런데 찬찬히 톺아보면 ‘고마’가 곰의 옛말이라는 사실 말고는 곰이 실제로 살았는지 흐리터분하고 땅 생김새는 어떤지 살피지 않은, 뒤가 켕기는 설명이다.


고마와 곰, 드높고 귀하고 신성한

옛말에서 ‘고마’는 여러 가지 뜻으로 썼다. ‘고마’는 본디 말이 ‘’으로, ‘가ᆞ감’은 크고 드높고 신성한 존재를 가리키는 동시에 북쪽(뒤쪽)을 뜻하기도 한다. ‘’에서 ‘감(가마), 곰(고마, 고무, 고므), 검(거마, 거무, 거므), 금, 굼(구무, 구므), 개마, 거북’ 같은 소리 바꿈이 일어나면서 숱한 땅이름을 지어냈다.

우리 입에 붙은 말인 ‘고맙다’는 말도 말밑을 캐 보면 ‘고마’에서 왔다. ‘고마+ㅂ다’꼴인데, ‘고마같다’, 곧 ‘고마같은 분이다’이란 뜻이다. 그러다 ‘감사한다’는 곁가지 뜻이 생겨나 고마처럼 높고 귀하고 신성하다는 본뜻은 시나브로 없어져 버린다.

’은 신성하다, 높다, 크다, 많다 뜻 말고 ‘뒤’라는 방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은 여성 신(神)이다. 여성은 음양으로는 ‘음’을, 방위로는 ‘북쪽(뒤)’을 가리킨다. ‘고마’는 ‘니마>마’(前)와 맞서는 말로 ‘뒤’나 ‘북쪽’을 가리킨다. 고려가요 <동동>에 ‘곰’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 ‘곰’은 ‘고마’를, ‘님’은 ‘니마’를 뜻한다. ‘곰비임비’는 어떤 일이 연거푸 일어나는 때를 가리킨다. ‘곰븨님븨’나 ‘곰븨임븨’라고 했는데 <동동>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덕(德)으란 곰예 받고 (덕은 뒤(신령)에 받치옵고)

복(福)으란 림예 받고 (복은 앞(님)에 받치오니)

덕이여 복이라 하 (덕이며 복이라 하는 것을)

ᅀᆞ라 오소이다 (진상하러 오십시오)


오늘날 말에서 ‘고마’가 ‘뒤’라는 뜻의 흔적은 팔꿈치, 발꿈치라는 말에서 ‘-꿈-’으로 남았다. 또 땅이름엔 고마내, 곰내, 곰산, 고마나루(곰나루)에 흔적이 남았다. 이들 땅이름을 한자로 뒤치면서 ‘뒤’나 ‘북쪽’이라는 뜻은 버리고 ‘곰’(熊 곰 웅)을 비롯해서 ‘금’(金 쇠 금, 錦 비단 금), ‘검’(劒 칼 검), ‘감’(甘 달 감) 따위로 쓰면서 오늘날 오해가 빚어진 셈이다. 더욱이 땅이름에서는 ‘고마’에서 ‘ㅏ’가 떨어진 ‘곰’ 꼴로 나타난다. 웅진(熊津, 곰나루), 웅포(熊浦, 곰개나루), 금강(錦江) 따위 땅이름이 이렇게 생겨났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뜻이 좋은 한자로 골라 썼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에서 ‘웅진’과 ‘웅포’를 찾아보자.

고마.jpg 금강에 있던 웅진(왼쪽)과 웅포(오른쪽)

금강(錦江)과 웅진(熊津)은 공주 북쪽에 있다. 공주의 북쪽에 있는 강이라서 금강(고마강)이요 공주 북쪽에 있는 나루라서 웅진(곰나루)이 되었다. 웅포(熊浦)는 어떤가? 위 ≪대동여지도≫에서 오른쪽을 보자. 웅포는 금강 하류에 있는 나루로 함열 북쪽에 있다. 전하는 말로 ‘웅포’는 나루 생김새가 마치 곰이 금강 물을 마시는 모양이라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며 이곳 금강 이름을 달리 ‘웅포강’이라고도 한다. 함열은 오늘날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서북쪽이다. 함열에서 볼 때 웅포는 누가 봐도 북쪽에 있는 나루다. 다시 말해 ‘고마개, 곰개’다.


고마골은 어딘가?

처음으로 돌아가 동해시에서 보이는 ‘고마골’이나 ‘고무골’은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일까. 땅이름에 매이지 않고 땅 생김새를 살펴보면 대개 해가 잘 들지 않는 산 뒤편이거나 옛날 중심지(큰 마을)에서 볼 때 뒤쪽이다. 골이 깊지 않지만 제법 우묵하니 쑥 들어간 자리이기도 하다.

고마골3.jpg <조선지형도>(일제강점기)와 오늘날 지도(국토지리정보원)에서 찾아본 고마골

동해시 천곡동에 있던 고마골을 보자. 1910년대에 나온 <조선지형도>를 보면 사람들은 덕곡과 묘곡에서 흘러가는 내를 따라 가면서 집을 짓고 살았다. 고마골은 덕곡에서 볼 때 뒤쪽이요 북쪽이다. 산줄기로 볼 때도 고마골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 있다. 망상동, 비천동, 신흥동에 있는 ‘고마골’이나 ‘고마밑골’도 마찬가지다.

≪동해시 지명지≫를 쓰는 사람이야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말을 착실히 받아 적었는가 몰라도 ‘고마골’에 얽힌 곰 이야기는 뒷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옛날로 보면 고을 중심지나 조금 더 큰 마을에서 볼 때 ‘북쪽(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고마’가 ‘뒤’나 ‘북쪽’을 뜻하는 의미라는 게 희미해지면서 ‘곰’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을까.


[일러두기] 이 글에서 밑금 그은 붉은 글씨는 사라진 아래 아(.)를 쓴 글자를 가리킨다.


배달말 한입 더

우리가 입으로 지껄이는 말을 두고 남쪽에서는 한국어, 배달말, 우리말이라고 하고 북쪽에서는 조선어, 조선말라고 한다. 우리 글자를 가리키는 말인 ‘한글’을 배달말로 섞갈려 쓰는 사람도 적잖게 보는데 ‘한글’은 글자 이름이다. ‘나라말’로 쓰자는 사람도 있지만 ‘나라말’은 고조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다가 사라진 나라들이 썼던 말을 두루 싸잡지 못하는 데다 어떤 나라고 제 나라말이 없는 나라는 드물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절한 말은 아니다. 더욱이 나라말은 일본이 근대에 지어낸 ‘국어(國語)’를 그대로 뒤친 느낌이 든다. ‘배달말’도 좋지만 ‘우리’라는 말이 품은 뜻넓이가 지나치게 넓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겨레를 배달족이라고 했고 뒷날 남과 북이 통일하는 때를 내다보면 ‘배달말’이 어떨까 싶다. 배달말은 지난날 주시경이나 최현배 같은 분들도 두루 쓰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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