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3) 고불개
화랑개, 고불개, 회탕개, 삼굿개, 솔개……
언뜻 들으면 진돗개, 삽살개, 오수개, 더펄개, 불개 같은 개 이름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많을 듯하다. 모두 동해시에 있는 땅이름이다. 이 가운데 고불개는 왜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 지금껏 누구 하나 속시원하게 말밑을 알려주진 않았다.
고불개는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다. 뒤엣말 ‘개’는 배달말 사전에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했지만 이곳에는 내가 없으니 바다가 뭍으로 우묵하게 파고 들어온 물굽이나 그냥 ‘물가’나 ‘바닷가’를 뜻하는 말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엣말 ‘고불’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름을 붙였을 때는 나름 그만한 까닭이 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름 유래를 찾기 어렵다. ≪동해시 지명지≫조차도 “가세 마을 남쪽의 바닷가를 가리킨다”(268쪽)고 하나 마나 한 설명을 달아 놓았다.
땅이름에서 ‘고’나 ‘불’은 각각 다른 땅을 가리킨다.
우선 ‘고’는 툭 불거져 나온 물건이나 자리로 생각해 봄 직하다. ‘코(고ㅎ)’, ‘곶(꽃)’, ‘곶게/곳궤(꽃게)’, ‘곳갈(고깔)’, ‘곡광이(곡괭이)’, ‘고뿔(감기)’, ‘송곳(솔곶)’에서 ‘고’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코는 얼굴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데다. 꽃도 줄기에서 툭 삐져나온 것이며, 꽃게도 등딱지 양 쪽 끝이 삐죽하게 튀어나온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 땅이름에서는 ‘고’는 ‘곶, 곳, 곡’처럼 나타난다. 산줄기가 들이나 강, 바다로 삐죽하게 내민 땅이다.
땅이름에서 ‘불’은 다시 둘로 갈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모래밭’을 뜻하는 ‘불’이요 다른 하나는 산부리를 뜻하는 ‘불’이다. 송정불, 연해불, 후릿불, 망상불에서 보듯 동해삼척 말에서 ‘불’은 모래밭, 모래벌판을 뜻한다. ‘송정불’은 지금은 동해항으로 사라지고 없지만 1960년대만 해도 비행기가 뜨고 내릴 만큼 넓고 긴 모래밭이었다. ‘연해불’은 망상동 기곡에서 강릉 옥계면 도직까지 이르는 모랫벌을 가리킨다. 후릿불도 지금은 사라져 흔적도 없지만 동해위생처리장 옆 바닷가 모래벌이다. 고기를 후리는 방식으로 잡던 곳이다.
경상북도 영덕 병곡면에 가면 ‘고래불’이 있다. 모래벌이 십여 리에 이를 만큼 길고 넓은 데다. ‘디지털영덕문화대전’엔 고려 말 사람인 이색(1328~1396)이 “해수욕장 앞바다에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말밑을 설명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고래불 뒤쪽 들을 보면 바닥이 깊숙하고 늘 물이 있어서 기름진 논이다. 이런 논을 가리켜 고논, 고답, 구레논, 고래실, 고래실논이라고 한다. 고래논이 있는 벌판에 이어진 모래벌이라고 해서 ‘고래불’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래불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가면 6․25 때 장사 상륙작전을 펼친 곳으로 이름난 장사해수욕장이 있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이곳은 ‘진불’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긴 모래벌이다. 그런데 ‘고불’은 아무리 좋게 봐도 불(모래벌)이라고 하기엔 머쓱할 만큼 좁고 소박한 바닷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고불개는 땅 생김새로 보면 마을 북쪽과 남쪽에 산줄기가 툭 불거져 나온 곳이라 ‘곶’으로도, ‘산부리’로도 볼 수 있다. 배달말 사전에 산부리를 “산의 어느 부분이 부리같이 쑥 나온 곳”이라고 했다. 산부리가 곶처럼 쑥 내민 곳에 있는 개(포구)라고 보면 ‘고불개’라는 이름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곶+부리+개’ 짜임인데, 이 말이 ‘곶부리개→ 곶불개→ 고불개’처럼 되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해안선이 고불고불한 데 있는 포구(개)라고 고불개로 썼을 수도 있다. 동해안 해안선은 대체로 밋밋한데 이곳 땅 생김새를 보면 구불구불하긴 하다. 물론 말밑을 어떻게 볼지는 여러분에게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