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4) 화랑개, 화릉개, 웃섬, 화개
고불개, 화랑개, 개목(갯목)처럼 ‘개’가 붙은 곳이 여럿 있다. 갯목은 알겠는데 고불개나 화랑개는 산인지 바다인지 내인지 헛갈린다. 물론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으로 포구를 가리키는 배달말이다.
우선 화랑개는 지금은 동해항이 된, 날앞과 손목 사이 전천을 말한다. 전천 물줄기가 손목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쌓인 모래로 바로 빠지지 못하고 맴돌면서 머무는 까닭에 이곳을 ‘구호’(龜湖)라고도 했다. 멀리서 화랑개가 있는 데를 보면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웃섬, 앞섬, 딴섬이라고도 했다. 그 물줄기 끄트머리에 화랑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낸 ≪조선지지자료≫엔 ‘화릉개, 화랑포(花浪浦), 화랑계(花浪溪), 화랑포구’로 적었다. ≪삼척군지≫ 「북삼면」 ‘송정리’에서는 “그 남쪽으로 큰 들판을 사이에 두고 북천(北川) 하류에 이어져 있다. 그 북쪽에 있는 화랑포(花浪浦)는 바닷가에서 놀며 즐길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이라고 적었다. 다른 말로는 ‘청룡포’라고도 했다. ≪삼척향토지≫를 보자.
북평읍 송정리에 있고 송호(松湖)라고도 한다. 포구와 바다가 서로 잇닿아 있어 흰 마름꽃과 푸른 구리때가 수북히 떼 지어 경관을 이룬다. 여름철은 해수욕과 뱃놀이로 장관이다.(124쪽)
날앞은 ‘나루 앞’인데, ‘날’은 ‘나루’가 줄어든 말이다. 오늘날 동해항 여객선 터미널 자리다. 이곳에 있는 정자(영호정)에서 바다 쪽을 내려다보면 복숭아꽃이 피고 파도가 치면 물결이 부딪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영호정은 천곡동 한섬 바닷가에 옮겨 ‘관해정(觀海亭)’으로 이름을 바꿨다. 간추려보면 화랑개는 바다로 드나드는 개 어귀다. 이때 화는 꽃 화(花) 자, 물결 랑(浪) 자를 썼다. 한자 뜻으로 보면 꽃이 물결치듯 아름다운 포구라고 하겠다.
옛모습이 흔적 없이 사라진 곳이라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한문깨나 읽은 선비들이 한자 뜻과는 아무 관계 없이 그저 소리를 빌려 적은 이름으로 봐야 한다. 같은 값이면 그럴듯한 뜻을 담아 이름을 지으려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그 실마리가 바로 ‘화릉개’에 있다.
땅이름에서 ‘곶’은 ‘꽃’을 가리키는 옛 소리와 어금지금한 탓에 곧잘 한자 ‘화(花, 꽃)’로 탈바꿈한다. “곶 됴코 여름 하나니”(<용비어천가> 제2장)에서 보듯 조선 시대 기록에 ‘꽃’은 ‘곳, 곶, 곧’으로 적었다.
‘화개장터’는 화개천이 흘러 내려오다가 화개면에서 섬진강을 만나는 곳에 있다. 화개는 강으로 툭 불거져 나온 곳으로 ‘곶’과 같은 땅 생김새 때문에 한자 '화(花)'로 받아 ‘화개(花開)’라는 이름을 얻었다. 화릉개의 '화'도 '곶'을 뜻하는 말로 볼 수 있다.
뒤따르는 말 ‘릉(陵)’은 어떤 뜻일까. 갯가라서 무덤 쓸 자리는 아니고, ‘릉’이라고 할 만한 무덤도 근처에 없다. 같은 무덤이라도 누가 묻혔느냐에 따라 능도 되고 원도 되고 총도 된다. 능(陵)이라는 이름을 붙이자면 왕이나 왕비의 무덤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화릉’을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일까. 내 생각이지만 ‘릉(능)’은 늘어진다고 할 때 [늘] 소리를 빌려 적은 한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화릉개’는 곶(花)이 기다랗게 늘(陵)어진 포구(개)다. ‘곶이 늘어진 개’라고 해서 ‘곶늘개>곶는개>꽃능개>화랑개’처럼 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배달말 한입 더
<용비어천가>(1447)에 보면 ‘개’를 나타내는 땅이름이 여럿 보인다. 이를테면 ‘金谷浦(금곡포): 김곡개, 助邑浦(조읍포): 조옵개, 合浦(합포): 합개, 石浦(석포): 돌개, 圉仍浦(어잉포): 어싱개, 沙浦(사포): 바얌개, 梨浦(이포): 배애, 三田渡(삼전도): 삼받개’ 같은 개 이름이 나온다. 한자 땅이름과 한글 땅이름을 견주어 보면 한자어 浦(포)와 渡(도)에 대응하는 배달말은 ‘개’와 ‘애’를 썼다. ≪훈몽자회≫(1527)에는 “浦 [개 보 大水有小口], 漵[개 셔 浦也], 港[개 항 汊港水派 又水中行舟道又藏舟處], 汊[개 차 水歧流]”라고 새겼다. 오늘날 배달말 사전에서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으로 매우 좁게 풀어놨지만, 갯가 사람들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만 아니라 바다가 뭍으로 굽이지어 파고든 ‘물굽이’도 개라고 했고 '물가'나 '바닷가'도 ‘개’라고 썼다.
전천하구 화랑포 옆에 있던 영호정_1975년 ≪동해시 역동의 기억≫(동해시, 2020, 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