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8)
[일러두기] ‘달’처럼 붉고 굵은 글씨로 쓴 글자는 홀소리를 아래아(•)로 썼습니다.
우리 땅 이름을 보면 아무 꾸밈 없이 수수하다. 가령, 백석 시에 나오는 ‘여우난골’은 여우가 자주 나오는 골짜기임을 드러낸다.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정선군 북평면 숙암리)는 바위를 안고 돌고 등을 지고 돌고 다래미(다람쥐)도 한숨 쉴 만큼 바위가 많은 길을 뜻하고, 베리실은 벼랑이 있는 마을인 줄 땅이름으로 바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에 있는 ‘납운돌’이란 땅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정선군청 ‘지명유래’에 나온 설명은 이렇다.
동강변 남운교를 지나 갈벌 동쪽으로 난 골짜기를 따라 3백여 미터 들어간 곳에 있는 마을이다. 개울에 넓은 반석이 있다고 해서 ‘너븐돌’이라고 했는데, 옛 족보등 문헌에는 광석리(廣石里)로 표기하고 있다.
‘납운돌’은 ‘너분돌’을 받아적은 이름이다. 배달말은 홀소리 바뀜이 너그럽다. 피륙, 종이 따위의 ‘너비’를 ‘나비’라고 한다. 넙적하다를 납작하다고 하면 느낌은 달라져도 뜻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이름인 ‘광석’은 넓은 광(廣), 돌 석(石) 자를 썼다. 실제로 동강에 너럭바위(반석)가 있다손쳐도 산 쪽으로 펼쳐진 마을 모양새로 볼 때 마을 전체를 싸잡는 이름으로 삼기엔 모자란 느낌이 든다. 오히려 납운돌은 ‘넓다’의 매김씨꼴인 ‘너분/넓은’에 땅이나 들을 뜻하는 ‘달’이 붙어 ‘너븐달’로 보아야 한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납운돌’은 예미초등학교 운치분교장이 있는 마을로 땅 모양새를 보면 동강 쪽으로 느릿하지만 제법 펀펀하게 땅이 펼쳐진 자리다. 넓은 땅으로 이름 짓기에 넉넉하다.
비슷한 땅이름이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에도 있다. ‘납돌(納乭)’ 마을이다. 이곳 설명도 엇비슷하지만 흐리터분하다.
의림길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일설에는 냇물이 흐르는 바닥의 돌이 넓다 하여 생겨난 지명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영월 엄(嚴)씨로 인해 생겨난 지명이다.
설마 냇가 바닥 돌이 넓다고 해서 마을 이름으로 썼을까. ‘영월 엄 씨’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유명해진 ‘엄흥도’ 집안을 말할 텐데,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지형도>(1917)에는 ‘납도리(納道里)’로 썼다. 땅 모양새로 볼 때, 산골치고는 의림천 가장자리에 생겨난 펀펀한 땅이다. 이때 ‘돌’은 ‘다ᆞ갈’로, 땅을 가리키는 옛말로 보아 납돌은 ‘넙달’로 뒤쳐 생각해봄직하다. 응달(음달), 양달, 난달, 산달, 빗달(비탈)에서 보듯 ‘달’은 땅을 뜻한다. 납달은 ‘납작한 땅’, 곧 펀펀한 땅을 가리킨다.
한편 강릉시에 ‘납돌’이란 데가 있다. 신석동의 옛 이름으로 설명은 이렇다.
신석동은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납이 든 돌이 많이 나서 납돌이라 하는데 이를 한자로 고쳐 신석이라 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돌이 눈에 띄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에는 납(금속)이 든 돌이 많아서 ‘납돌’이라 했는데, 어째서 ‘신석’이 되었을까. 이때 신(申)은 원숭이를 뜻하는 ‘납’이다. ≪훈민정음 해례≫(1446)에 ‘납 爲猿’(납은 원숭이다)이라고 나온다. 납은 본디 재빠른 짐승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고양이를 ‘나비’라고 하는데 ‘납’에 뒷가지‘-이’를 붙여 ‘납이’가 되고 ‘나비’로 소리낸 셈이다. 재빠르고 날랜 짐승이란 뜻이다. 마찬가지로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로 16세기 말까지 ‘납’으로 쓰다가 17세기 초에 와서 ‘납’이 된다. 18세기 이후엔 ‘납’에 뒷가지 ‘-이’가 붙어 ‘납이/나비/잔나비’로 된다. ‘잰’은 ‘잿빛’을 뜻하는 말로 보는데, ‘잔나비’는 잿빛 털이 난 재빠른 짐승인 셈이다.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말 ‘원성(猿猩)’은 18세기 이후에 나타났다. ‘신석’은 납 신(申), 돌 석(石)을 써서 ‘납돌’을 곧이곧대로 받아적은 셈이다. 하지만 이때 ‘돌’은 ‘돌(石)’이 아니라 들이나 땅을 뜻하는 ‘달’을 받아적은 말일 수 있다. 납들은 곧 넙들이다. 너른 들이다. 실제로 남강릉 나들목에서 강릉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신석동은 너른 들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