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 개안, 개목, 포항, 개메기, 과메기
[일러두기] 이 글에서 밑금 그은 붉은 글자는 옛 배달말 적기에서 쓰던 아래아(.)가 든 글자다.
비가 땅에 떨어져 골짜기로 모여들어 돌돌돌 내려오면 ‘도랑’이 된다. 도랑이 흘러와 모이면 ‘개울’이 된다. 부지런히 흐르면서 개울 여럿이 모여 물줄기를 키우면 ‘개천’이 된다. 개천은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용비어천가 2장)에 나오는 ‘내’가 되고 ‘가람’을 이뤄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오늘날 배달말 사전에서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으로 좁게 뜻매김해놓았지만 동해삼척 말에서 개는 냇가나 바닷가처럼 물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먼저 ‘개안’은 전천과 손목(개목, 갯목) 사이를 가리킨다. 지금 동해항 남쪽 부두에 있는 쌍용씨엔이 시멘트 공장 부근이다. 개(浦) 안쪽에 있다고 해서 ‘개안’이다. ‘개목’(갯목)은 전천이 바다와 만나 좁아지는 목을 말하는데, 이곳에 있던 마을을 일컫기도 한다. 건널목, 길목, 구들목, 노루목, 나들목에서 보듯 ‘목’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하고 좁은 곳이다. 한때 개목은 어시장이 열릴 만큼 마을이 컸다. 한자 이름으로는 ‘포항’(浦項)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찾아보면, 2015년에도 동해시 구호동에 ‘포항동’이라는 땅이름을 실제로 볼 수 있다. 다만 포항동 자리를 생뚱맞게도 내(전천)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뭍 한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경상북도 포항시의 '포항'의 옛 이름이 ‘갯메기’, ‘갯미기’다. 갯목(개목)이 갯메기(개메기)로 소리 바꿈이 일어났다. 이 현상은 ‘과메기’로 설명할 수 있다. 흔히 겨울바람에 말린 꽁치를 과메기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본디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다. 청어 눈을 꿰서 말렸기 때문에 한자 이름으로는 ‘관목(貫目)’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하는 미심쩍은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바닷가 마을에서 청어나 꽁치는 말할 나위 없고 물고기를 말릴 때 어떻게 하는가? 발에 널거나 짚으로 엮어 말리거나 물고기 주둥이를 꿰어 말리는 일은 있어도 꼬챙이로 물고기 '눈'을 꿰어 매달아 말리는 일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청어>에서 ‘관목청(貫目靑)’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모양은 청어와 같으며 두 눈이 관통되어 막혀 있지 않다. 맛은 청어보다 낫고 건어물로 만들면 더욱 맛있다. 그러므로 무릇 ‘청어 말린 것’을 모두 ‘관목’이라 부르는 것은 명실상부하지가 않다. 영남 바다에서 나는 것이 가장 희귀하다.(정약전 지음(1814), 권경순‧김광년 옮김(2022), 자산어보, ㈜미르북컴퍼니, 43쪽)
정약전 말을 빌리자면 청어 가운데 ‘두 눈이 관통되어 막혀 있지 않’으면서 ‘영남 바다에서 나는 것’을 귀하게 치던 물고기가 ‘관목청’, 다시 말해 ‘과메기’다. 이 말은 나무 꼬챙이로 눈을 꿰 말렸기 때문이 아니라 두 눈 사이가 마치 뚫린 듯 말갛게 보여서 ‘관목’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다만 ‘관목’에서 ‘목’이 ‘목이>멕이>메기>미기’로 소리 바꿈이 일어나면서 ‘관메기’가 되고, 다시 ‘ㄴ’이 떨어져 ‘과메기’로 굳어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포항의 옛 땅이름도 본래 ‘갯목’이었으나 소리내기 편한 대로 ‘갯메기’나 ‘갯미기’가 되었다.
길게 말했지만, 전천 끄트머리에 있는 ‘개목’도 흘러온 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이르러 쌓인 모래로 물길이 좁아든 곳이다. 지금 ‘개목’의 흔적은 길 이름으로 남았다. 동트는운동장에서 호혜정, 만경대를 지나 북평다리에 이르는 길을 ‘갯목길’이라고 한다.
말이 났으니 ‘개’가 들어간 말 가운데 물과 관련된 배달말이 꽤 된다. 개골창, 개울, 개울물, 개고랑(=개), 개 따위가 있다.
(사진 출처: ≪동해시 역동의 기억≫(동해시, 2020, 31쪽, ‘송정해수욕장 갯목의 황포돛배, 196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