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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는 새맷골에서 왔다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7) 새맷골, 금곡, 삼화, 삼불, 삼공

by 이무완

초등학교 3학년 사회 시간에 아이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을 공부한다. 그런데 땅이름 유래를 찾아보면 어렵기도 하거니와 참 불친절하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다는 말 없이 대충 얼버무려 말해놓은 설명이 대부분이다.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의 ‘삼화’도 그런 땅이름 가운데 하나다. 삼화동은 동해시 서쪽 끝자락에 있다. 백두대간 줄기인 두타산(1357미터), 청옥산(1404미터), 고적대(1354미터)가 서쪽을 막고 무릉계곡에서 흘러나온 삼화천이 파수굼이에서 신흥천과 만나 전천을 이룬다. 삼화동은 1914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감나무골, 개심평, 금곡, 사원터, 쐑실을 묶어 ‘삼화동’이라고 하여 북삼면에 넣었다.


삼화의 옛 이름 새맷골

≪삼척군지≫ 「북삼면」 ‘삼화리’에서 “무릉․방현․금곡․소학․사원기 등 다섯 개의 마을”을 묶어 ‘삼화’라고 했다. ≪동해시 지명지≫는 땅이름 유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전에는 삼정승이 나는 명당 자리가 있다는 데에서 三華(삼화)로 적었는데, 1916년 이래 三和(삼화)로 한자를 바꾸어 적은 것으로 보인다. 三和(삼화)라는 표기는 삼화사(三和寺)에 이끌린 것이다. 한자지명에서 유래한 속지명은 삼홧골이였으나, 이것이 흔히 새맷골이라고 하였다.(210쪽)

‘삼화(三華)’에서 ‘삼화(三和, 삼홧골)’를 거쳐 ‘새맷골’이 되었다는 소린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삐끗 꼬게 된다. 누가 맨 처음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풍수지리설 영향이 끼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어느날 갑자기 삼정승이 날 명당 자리가 있으니 ‘삼화’를 땅이름으로 하겠다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오히려 ‘새맷골’이라고 하다가 뒷날에 가서 ‘삼화(三華, 三和)’로 시나브로 바뀌었다고 보는 게 더 온당하다.


삼화는 과연 절 이름 삼화사에 끌린 땅이름인가?

삼화동에 신라 때 자장법사(590~658)가 세웠다는 삼화사가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삼화사는 왜 삼화사라고 했을까. 처음엔 ‘흑련대’라고 하다가 신라 말인 851년에 이르러 비로소 삼공암(三公庵)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는 설명이 지금까지 공식 기록이다. 아마도 처음엔 자장법사가 머물며 수행하던 토굴 정도이다가 신라 말에 이르러 여러 스님들이 모이면서 암자 수준으로 커졌으리라. 지금 이름으로 고친 때는 고려 태조 때다. ≪태조실록≫에 “삼화사는 고려 공민왕 18년(1369년)에 나옹선사의 참석과 더불어 중창되었다”고 썼고, ≪동국여지승람≫(1481)에 “신라 말에 세 선인이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여기에 모여 회생하였다”고 했고, ‘삼신인(三神人)’이 머물렀다 하여 ‘삼공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이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삼척도호부> ‘불자’ 조에 “대개 신인이 자리를 알려주었다. 조사가 그 터에 절을 지어 상서를 기록하였으며, 신성왕께서 삼국을 통일하였으니 그 영험이 현저하였으므로 이 사실로써 절 이름을 ‘삼화사’라 했다”고 한다. ≪강원도지≫(1940)에 ‘두타산에 삼선(禪)이 들어와 산 네 곳을 연꽃으로 표시’했다 한다. ‘삼공암’을 ‘삼화사’로 바꾼 때는 고려 초기로 보건대, ‘삼선(三禪), 삼불(三佛), 삼신(三神), 삼공(三公), 삼화(三和)’에서 보듯 줄곧 ‘삼(三)’이 나오는 데는 까닭이 있지 않을까.


성스럽고 상서로운 수 3

숫자 3은 우리 문화 곳곳에서 보인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비, 바람, 구름(3신)을 거느리고 칼과 방울, 거울과 같은 세 가지 물건을 받아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온다. 고구려 건국을 상징하는 ‘삼족오’(발이 셋인 까마귀), 절집 어디든 기본적으로 ‘삼존불’을 모시고, 아이를 점지하고 태어나고 자랄 때까지 보살핀다는 신 이름은 삼신할미다. <훈민정음>은 하늘(∙)과 땅(ㅡ), 사람(ㅣ)을 바탕 삼아 지었다. 이처럼 우리 문화에서 숫자 3은 성스럽고 상서롭다 여겼다. (참고로, 삼신할미의 ‘삼’은 숫자 3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배달말 사전을 보면 ‘삼’은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아기를 낳은 뒤 탯줄을 자르는 일을 ‘삼을 가른다’고 한다. 이 말에 신(神) 자를 붙여 ‘삼신(三神)’을 만들어 아기를 점지하고 산모와 갓난애를 돌보는 신령으로 삼았다.)

그런 까닭에 같은 값이면 좋은 이름으로 쓰려는 마음으로 숫자 ‘3’을 땅이름에 끌어다 썼겠지만, 아무 관련이 없을 때도 허다하다. 사이․새, 샛(동쪽, 밝음), 쇠(철)를 뜻하는 말인데 말밑 의식이 흐리터분해지면서 한자의 뜻이나 소리를 빌려 적으면서 엉뚱한 땅이름이 생겨나기도 한다.

동해-삼화(조선지형도).jpg 1910년대 삼화. 보는 눈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삼화나 금곡이나 새맷골로 볼 수 있다.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샛불, 불 사이에 있는 마을

내 보기에 삼화에서 삼(三)은 ‘새, 사이’를 뜻하는 말로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화(和, 華)도 사이좋음(和)이나 꽃(華)을 뜻하기보다 애초 ‘(묏)부리’라는 소리를 받아적은 한자다. 삼불(三佛)도 부처를 뜻하는 말이라기보다 ‘불, 부리’를 적은 말로 ‘삼화’보다 앞서 생겨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을 앉음새로 보면 산줄기 사이에 있는 마을(골)이라고 해서 ‘사이묏골/사이멧골’이다가 이 말이 줄어 새묏골(금곡), 새맷골(삼공)이 된다. 한편, 산줄기 사이에 있는 벌로 보면 ‘사잇벌’이 되는데 이 말이 줄어들면서 ‘샛불→ 삼불(三佛)→ 삼화(三火)→ 삼화(和, 華)’처럼 한자 바꿈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가령, 강원도 철원군의 옛 이름은 쇠벌, 새벌이다. 큰 들이라는 뜻인데, ‘새벌’이 ‘쇠벌’을 거쳐 쇠 철(鐵) 자, 벌판 원(原) 자를 쓴 ‘철원’이 된다. 또, 철원군 금화(金化)는 고구려 때 이름도 쇠 금(金), 불 화(火) 자를 쓰는데 배달말로 새기면 쇠벌, 새벌이 된다. 땅이름에서 불 화(火) 자는 흔히 벌(들)을 뜻하는데, 화(化, 될)나 화(和, 화목할)는 불 화(火) 자 소리만 빌려 쓴 표기다.

더욱이 이 골짜기에 ‘삼존불’을 기본으로 모시는 ‘삼화사’라는 절집이 있고 두타산과 청옥산, 고적대 같은 높은 산부리도 셋이라는 점도 관련지어 생각했는지 모른다. 삼화사 옛 이름인 ‘삼공암’도 처음엔 이름 없이 ‘새맷골에 있는 작은 절집’이라는 식으로 쓰다가 한자로 줄여 적으면서 ‘새→ 삼, 골(짜기)→ 공, 절집→ 암’처럼 된다.


삼화의 옛 이름은 새맷골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 옛 지도로 보면 ‘삼화’의 옛 이름은 ‘새맷골’로 봐야 한다. ≪대동여지도≫(1861)로 보나 ≪조선지형도≫로 보나 두 내 사이로 뻗어 나온 산줄기를 따라 생겨난 마을이다. 삼화 쐑실 서남쪽에 있는 금곡은 단순히 한자 뜻으로만 톺아 ‘쇳돌이 많이 났다’는 설명은 쇠 금(金) 자에 지나치게 얽매인 게으른 해석으로 그다지 믿을 만한 설명은 아니다. 오히려 방현과 쐑실 마을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샛골’인데, 소리가 바뀌어 ‘쇳골’이 된 다음 한자로 적으면서 ‘금곡’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1940년대 삼화철산이 들어서 철광산을 개발하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실제 삼화철산 광산은 ‘금곡’에 있지 않고 금곡마을 남쪽 삼화천 건너에 있었다. 길게 말했지만, 삼불, 삼공, 삼화, 금곡은 모두 새맷골에서 나온 땅이름으로 볼 때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삼화제철소(대동현대A).jpg

삼화철산은 1943년 12월부터 일부 용광로를 돌리기 시작한 남한 지역 최초 제철소인 삼화제철소와 비슷한 시기에 철을 캤을 것으로 본다. (사진 출처: ≪동해시 역동의 기억≫(2020,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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