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 쐑실, 소학실, 금곡, 쇠금골
삼화동에 쐑실 마을이 있었다. 삼화동에 있던 다섯 마을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었다. 삼화역 근처 마을인데 개심평과 사실마을, 감나무골 같은 작은 마을을 싸잡아 ‘쐑실’이라고 했다. 삼화동 200번지 일대로, 지금은 쌍용씨엔이 동해공장 안쪽으로 들어가 마을은 사라졌다.
≪동해시 지명지≫에 “쐑ː실의 ‘쐑ː’은 한자 땅이름인 ‘소학’(巢鶴)이 음변화하여 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면서 마을에 “큰 느티나무들이 있어서 홍월평에서 날아온 학들이 둥지를 치고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쐑ː실은 한자로 曬悉(쇄실)로 적기도 한다”고 나온다.
번거롭지만 한자부터 먼저 살피자면 ‘소학’할 때 ‘소(巢)’는 ‘깃든다’는 뜻이고 ‘쇄(曬)’는 햇볕을 쬔다는 뜻이다. 뜻으로 보면, 학이 깃들어 사는 마을,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마을이 되어 그럴듯하다. 실제로 쐑실 마을은 송미산 남동쪽 끄트머리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금곡천(이기천)과 삼화천이 흐르는 홍두들을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있다. ≪이야기가 있는 삼화≫도 쐑실이란 마을 이름 유래를 비슷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로리 아이들은 ‘사실고개’를 넘어 학교로 갔다. ‘사실’은 강하게 ‘쐑실’이라 불렀는데, 이는 소학(巢鶴, 새집소)의 음이 변하여 발음되었다. 느티나무 숲이 있었는데, 홍월평의 학들이 날아와 둥지를 치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175쪽)
그런데 ‘소학’이 줄어들어 ‘솩>쇅>쐑’처럼 되었다는 설명은 개운치 않다. 우리 땅 어느 마을 이름이든 한자 이름(소학실, 쇄실)이 먼저가 아니라 배달말 이름이 먼저 있고 뒷날에 한자로 받아적는 게 자연스런 과정 아니겠나. 더욱이 학이 와서 둥지를 치고 살던 곳이라고 한다면 땅이름을 ‘소학’(깃들어 사는 학)이 아니라 ‘학소’(학이 깃들어 산다)로 써야 했다. 당장에 무릉계곡에 학이 머물 만큼 경치가 빼어난 바위벽을 뭐라고 하는가. ‘학소대’(鶴巢臺)라고 하지 ‘소학대’라고는 하지 않는다. ‘학이 둥지를 짓고 사는 마을’이라고 했다면 ‘학소 마을’(학소동)이나 ‘학마을, 학실, 학골, 학동’처럼 되어야 했다. 지난날 구실아치가 ‘쐑ː실’을 소리가 비슷한 한자로 마을 이름을 적으려고 하다 보니 ‘소학’이니 ‘쇄실’ 같은 억지스러운 이름이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동해시 지명지≫는 ‘소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조 중엽 영남의 이름난 지관인 도풍이 더바지재를 넘어 영서 지방으로 가려다가 이 곳에 묵은 적이 있다. 마을 주변을 살펴본 도풍은 주막 주인에게 ‘철마명동 소학부동(鐵馬鳴動 巢鶴浮登)’이란 문구를 남기고 떠났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문구가 뜻하는 바를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 의심스러워 하고 때로는 불신하여 왔다.(204~205쪽)
집터나 묏자리를 보던 풍수가 주막에서 남긴 글귀에 ‘소학’이라는 말이 실제로 있었다손 쳐도 어떻게 해석할지 몰랐다면서 어찌 마을 이름을 ‘소학동’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뒷날 일제강점기에 실제로 삼화철산이 들어서고 기찻길이 나고, 1968년엔 쌍용양회 동해공장이 들어선 사실에 꼬치에 산적 꿰듯 엉거주춤 엮어 ‘철마가 기적을 울리며 내달리고(철마명동) 소학 마을이 높이 떠오른다(소학부등)’란 예언이 이뤄진 것처럼 떠벌리는데 어처구니 없다.
내 보기엔 이미 있던 배달말 땅이름인 ‘쇠에실’이 줄어 ‘쐑ː실’이 되고 거기에 그럴듯한 한자 땅이름인 ‘소학동’를 갖다 붙인 뒤 얼토당토않은 풍수 이야기를 끌어들인 말장난일 뿐이다.
초등학교 교과에 ‘즐거운생활’, ‘슬기로운생활’, ‘바른생활’이 있다. 그런데 아이고 어른이고 ‘즐생, 슬생, 바생’이라고 하지 본디 교과 이름대로 말하는 일은 드물다. 이렇게 긴 말을 줄여서 짧게 말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말글살이 모습이다. 긴 땅이름도 말마디를 줄여 쓰는 일을 허다하다. 그러니 ‘쇠에실’이 ‘쇄에실’이 된 다음 [ㄱ] 소리가 보태지면서 ‘쐐액실’이 되었다가 ‘쐑ː실’로 굳었을 가능성이 높다. 매김토씨 ‘의’는 [어], [아], [에] 소리로 곧잘 바뀐다. 가령 가매골은 ‘감+의+골’이 ‘감어골>감에골>가메골>가매골’처럼 바뀌면서 생겨난 땅이름이다. 더욱이 [쇠]가 [쇄]처럼 소리가 바뀌는 일은 지역 말에서 매우 흔하다. ‘쇅이다’(속이다), ‘쇙편’(송편), ‘쉔반’(쉰밥), ‘쉐다’(쉬다)처럼 소리가 바뀐다. ‘쇠에실’은 ‘쇠(金)+에(자리토씨)+실’로 ‘쇠에실’처럼 된다. 하지만 이때 ‘쇠’는 금속으로서 철을 말하기보다는 ‘사이’의 준말인 ‘새’가 소리가 달라지면서 생겨난 말로 보아야 한다.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새어실>쇠에실>쐐실’을 거쳐 ‘쐑ː실’처럼 되었고 한자로 적으면서 뜻과 아무 관계 없이 ‘소학’으로 받아 적었으리라.
그렇게 보면 ‘금곡’, ‘쐑ː실’은 같은 땅이름으로, 애당초 같은 마을을 가리키던 말이 한자로 받아적는 과정에서 금곡, 소학동으로 갈라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