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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곳곳에 있는 '부곡'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 부곡, 개맬, 감일

by 이무완

우리 땅 곳곳에 '부곡'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울산시 남구, 대구시 달성군을 비롯하여 경남 창녕군, 김해시, 경북 김천시에도 '부곡'이 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 땅이름도 '부곡'이었다. 어른들 말로는 솥과 닮은 땅이라고 했지만 어린 마음에 어떻게 봐야 솥처럼 보일까 싶었다. 동해시의 '부곡'은 1910년 개맬(감일)과 승짓골, 돌담 이렇게 세 마을을 묶으면서 생겨났다.

부곡-부곡.jpg 부곡리는 땅 생김새를 보면 서쪽 승지마을에서 동쪽 매동, 두도동('도두동'의 잘못), 석장으로 난 긴 골짜기를 싸잡는다.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부곡의 말밑 1: 개맬, 매화 피는 마을

≪조선지형도≫(1907~1919)에서 '매동'이 곧 ‘개맬’이다. 오늘날 묵호고등학교 앞쪽(북쪽)으로 보이는 마을로 짐작한다. '개맬'은 매화 피는 마을이라고 해서 ‘개매골(開梅谷)’에서 온 말이라고도 하고,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동해시 지명지≫(2017)는 ‘가마솥’과 관련이 없다고 하면서 ‘가마실’이 ‘감일’로, ‘부곡’으로 되었다고 한다.


부곡동은 甘逸감일, 勝地谷승지곡, 石墻석장의 세 마을을 합하여 1910년에 釜谷부곡이라 했다고 한다. 감일은 현재의 속지명 개맬, 승지곡은 승지골, 석장은 돌담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부곡이라는 지명은 솥을 엎어 놓은 모양의 명당 자리가 있어 붙은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속지명과 관련하여 생긴 지명으로 추정된다. ‘가마’에 골짜기를 뜻하는 ‘실’이 결합된 지명으로 이것이 대략 ‘가마+실→가마실>가마일>가맬>개맬’과 같이 변천한 것이고, 이 속지명 중 ‘가마일’에서 ‘가맬’ 단계를 음차한 한자 표기가 甘逸감일이고, 훈차한 한자 표기가 釜谷부곡이라고 추정된다.(117쪽)


다만 ‘가마실’이 말밑이라고만 했지 정작 ‘가마’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 어리둥절하다.

다른 이름인 ‘개매골’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내남없이 매화를 가까이 하고 매화를 닮으려고 했다. 더욱이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해서 옛사람들은 매화를 보면서 자신을 부단히 가꾸려고 했다.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시대 4대 문장가로 꼽는 신흠(1566∼1628)이 쓴 시를 보면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느끼게 한다.


오동나무는 천 년이 흘러도 늘 노래를 간직하고 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 모습 사라지지 않고 月到千虧餘本質

버드나무 백 번 꺾여도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柳經百別又新枝


자연스러운 귀결로 매화와 관련한 땅이름도 흔하다. 대개 풍수지리에 기대어 ‘매화가 떨어지는 자리’라고 해서 자손 대대로 크게 복 받을 명당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이들 설명을 찬찬히 살펴보면 실제 ‘매화’가 아니라 ‘뫼’(메, 미)가 ‘매’(매화)로 둔갑해서 생겨난 이름일 때가 많다. 매골, 매곡, 매실은 묏골, 뫼곡, 뫼실인데 요샛말로 하면 ‘산골’인 셈이다.

동해-부곡-개맬-수원지1.jpg 1940년대 초 1만6555㎡ 면적에 지은 옛 동해 상수시설은 일제 강점기 산업시설이자 근대문화유산으로 2004년 12월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지정한 국가등록문화재다.

개맬 마을은 볕 바른 곳이고, 마을 앞으로 승지골에서 흘러내린 부곡천이 동쪽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나 암만 너그럽게 봐도 매화 때문에 생겨난 이름으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이 마을은 매화보다는 벚꽃으로 더 유명하다. 1940년 일제는 유천골 아래에 수원지를 만들고 산기슭으로 물길을 내고 착수정과 염소 투입실, 정수지, 배수지 같은 시설(등록문화재 제142호)을 지었다. 그리고 둘레에 벚나무를 심고 유원지처럼 꾸몄다. 지금도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이곳에서 ‘유천제’라는 벚꽃놀이를 한다. 무엇보다 매화가 피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개매골’(開梅谷)이라고 했고, 이 말이 줄어 ‘개맬’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꽃이 핀다’고 할 때 ‘화개’(花開)라고 하듯 ‘매화가 핀다’고 말하려면 ‘매개’(梅開)라고 해야지 어째서 ‘개매’(開梅)라고 앞뒤를 바꿔 썼을까. 그러니 ‘개매곡’은 입에서 전해오는 ‘개맬’을 한자로 어설프게 받아적은 땅이름일 수밖에 없다.


부곡의 말밑 2: 개마을, 갯가에 있는 마을

≪동해시사≫에서 “초록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승지골을 지나 개맬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데, 갯가에 있는 마을”(532쪽)이므로 ‘개말’, ‘개맬’이라고 했다는 유래도 내 보기에 소리 닮음으로 어설프게 찍어 붙인 설명일 뿐이다.

배달말 사전에서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뜻매김한 까닭에 흔히 바닷가 포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개는 바닷가에만 있지 않고 내나 강에도 있다. 물이 빠졌다 다시 차오르는 곳을 흔히 ‘개’라고 했고 가장자리를 ‘갯가’라고 한다. 그러니 갯마을이 내가 흐르고 강이 있는 데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면 ‘갯마을, 갯말, 개실’이 되어야지 무슨 까닭으로 '부곡'으로 둔갑했는가 말이다.


부곡의 말밑 3: 감일, 가마골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부곡’의 옛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 실마리는 다름 아닌 ‘감일’(甘逸)에 있다. ‘감일’은 ‘실’에서 왔다. ‘실’이 ‘감실’로 쓰다가 한자 이름으로 적으면서 ‘감일’(甘逸)로 되고, 이 말이 소리가 달라지면서 ‘가밀>개밀>개맬’로 바뀌었다고 보아야 한다. 말밑을 ‘실’로 보면 지금 이름인 ‘부곡’(釜谷·가매골)도 저절로 설명된다.

동해-부곡-말밑.jpg 부곡이란 땅이름이 생겨난 갈래

땅이름에서 보는 ‘곰, 검, 감, 금, 고마, 개마’ 따위 말은 모두 ‘’을 뿌리말로 삼는다. 배달말 ‘’은 깊다, 크다, 신성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처음엔 골이 동서로 길게 난 곳에 있는 마을(골)이라서 ‘실’이라고 했으리라.

그러면 어째서 ‘감실’로 적지 않고 ‘감일’로 적었을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잘 알다시피 배달말을 받아적을 글자가 없다 보니 입으로 지껄이는 말과 받아적는 글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래 아(•)와 반치음(ᅀ)을 쓴 ‘감실’로 적고 싶었지만 반치음(ᅀ) 소리를 살린 한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비슷하게 받아 적은 땅이름이 ‘감일(甘逸)’이다.

더구나 한자 ‘逸(일)’을 오늘날엔 [일]이라고 소리내지만, 조선 시대에는 [실]에 가깝게 소리 냈다.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1527)을 보면 한자 ‘日’의 음과 훈을 ‘나 실’(실제 표기는 반치음(ᅀ)을 쓴)로 적었다. 곧 ‘실’은 [일]이 아니라 [실]에 가깝게 소리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감실’을 [감실] 어슷하게 소리 냈으리라.

동해-부곡-감일.jpg ≪훈몽자회≫(1527)에서 '日'의 새김

이 비슷한 보기는 얼마든지 있다. 당장에 망상 ‘기곡(基谷)’도 옛 이름은 ‘터일/테일’이라고 했고 한자로는 ‘퇴일(退逸)’로 받아적었다. 기곡은 배달말로 하면 ‘텃실’이거나 ‘텃골’이다. ‘텃실’은 땅을 뜻하는 ‘터’에 골짜기나 마을을 뜻하는 신라말 ‘실’이 붙어 생겨난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초기만 해도 ‘텃골’이라고 했다. 옛사람들은 ‘퇴일(退逸)’로 적지만 ‘逸’(반치음(ᅀ)이 든 )은 [일]이 아니라 [실]로 소리내서 [툇실]처럼 소리냈으리라. 다시 맨 처음 ‘감실’로 돌아가 ‘’이 ‘가마>가마’로 바뀌어 부(釜)로 뒤쳐지고, ‘’이 ‘실→ 실/일→ 실 →골’로 되면서 곡(谷)으로 뒤쳐 ‘부곡’이란 땅이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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