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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거나 신성하거나 뒤쪽이거나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20) 금단, 검단, 금단이골

by 이무완

금단이, 금단이마을

동해시 괴란동에 ‘금단이’라는, 이름이 해반주그레한 마을이 있다. 한자로는 거문고 금(琴) 자를 쓴 ‘금단(琴丹)’, 검을 검(黔) 자를 쓴 ‘검단(黔丹)’으로도 적는다. 땅이름에는 그 땅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마음이 담기게 마련이다.


사기막골 옆 옥녀탄금형 묫자리가 있는 마을

그렇다면 ‘금단’이라는 마을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떠도는 유래를 들어 보면 이렇다.

하나는 이 마을에서 500미터쯤 조금 떨어진 곳에 사기막골이 있다. 사기막골은 숯가마를 짓고 사기를 굽던 곳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흐리터분하다. ≪동해시 지명지≫에 “금단이를 한자로 黔炭(검탄)으로 적기도 하는 것”(37쪽)이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 마을에 있지도 않은 숯가마를 끌어다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는 설명은 억지스럽다.

풍수지리와 얽어 이 마을에 옥녀탄금형 묫자리가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라는 말도 있다. 옥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땅 모양새라는데 어떻게 보아야 그렇게 볼 수 있는지 나 같은 옹춘마니는 눈을 까뒤집고 봐도 모르겠다.

또, 먼 옛날 나이 든 부부가 이 마을에 살았는데 부부는 노래도 잘하고 거문고도 꽤나 잘 탔다고. 달이 훤한 어느 밤에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했는데 망우리봉 큰짐승이 마을까지 내려왔다가 그 소리에 크게 감동하여 돌아간 뒤로 이 마을만은 큰짐승이 개를 물어가는 일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거문고(琴)를 탄다(彈)고 해서 ‘금탄’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상하지 않나. 거문고 타는 소리가 큰짐승 마음을 울렸다고 하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그 소리에 자꾸 끌려서 다시 자주 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더는 오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이것저것 다 떠나 거문고(琴)를 탄다(彈)고 하려면 ‘금탄’이 아니라 ‘탄금’이라고 해야 한다. 충청북도 충주시에 남한강 줄기인 달천 가에 탄금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맞서 싸운 곳으로 이름난 곳이지만, 옛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가 되었는데, 배달말 정서로 보면 한자로 쓴다손 쳐도 ‘금탄’이 아닌 ‘탄금’이 되었어야 한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옥녀탄금형’만 봐도 그렇지 않나. 이런 까닭에 ≪동해시 지명지≫도 “이상의 유래설은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다”(37쪽)고 자른다.


우리 땅 곳곳에 있는 금단과 검단

우리 땅 곳곳에 금단, 검단이라는 땅이름이 널렸다. 국토정보맵에서 찾아보면 금단은 열한 곳, 검단은 서른 곳이 넘는다. 여기서 멀지 않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도 쇠 금(金) 자로 쓴 ‘금단’(金丹) 마을이 있다. ‘검단’이라는 딴 이름도 있긴 해도 ≪조선지지자료≫(강원도 3)에는 ‘금단촌’(金丹村)으로 적었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에서 마을 이름 유래를 찾으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검단이는 아침에 해가 떠 마을에 비치면 마을이 검붉게 보여 생긴 이름인데, ‘검붉다’는 뜻인 검단을 음차하여 검단(劍丹)으로 쓰고 있다. 또, 금단(金丹)이라 하는데, 이는 강릉 김씨들이 개척하여 그들의 성씨를 지명으로 삼았다.


마을이 검붉게 보여 생겼다거나 김씨들이 개척한 마을이라서 검단, 금단이 되었다는 말은 전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한다손 쳐도 땅 모양새는 조금도 살피지 않은 한자 새김일 뿐이다.


배달말 ‘감’에 뿌리를 둔 땅이름들

금단, 검단은 배달말 땅이름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한자 땅이름이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그게 한결 상식에 아깝다. 그러니 금단의 금(金, 琴)이나 검단의 검(黔, 劍)은 한자 뜻이 아니라 옛말 ‘감’(아래아를 쓴)을 소리로 받은 한자로 봐야 한다. 배달말 ‘감’은 크고 넓고 신성하다는 뜻으로 일가붙이 말들이 수두룩하다. ‘감’으로, ‘검’으로, ‘곰’으로, ‘굼’으로, ‘금’으로 소리냈다. 또 옛말에는 받침이 없었고 ‘가마’, ‘거무’, ‘고마’, ‘구마’, ‘고미’, ‘금와’, ‘거물’, ‘개마’ 같은 식으로 ‘닿소리+홀소리’ 꼴로 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 말을 한자로 받아적으면서 웅(熊․곰), 금(琴․거문고), 거문(巨文), 감(甘), 검(劍․칼, 黔․검다), 구(龜․거북), 흑(黑․검다), 칠(漆․검다), 현(玄. 검다), 부(釜․가마), 시(柿․감), 탄(炭. 숯)로도 나타난다. ‘감골’ 하나만 봐도 곰골, 감골, 가마골, 곰말, 고마골, 고무골, 웅동(熊洞), 시곡(柿谷), 부곡(釜谷), 고음곡(古音谷), 금곡(錦谷, 金谷, 琴谷), 공근(公根), 공주(公州) 따위로 나타난다. 예전엔 아주 큰 마을이라서, 높은 데 있어서, 신성한 곳이어서, 그도 아니면 뒤(북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인 이름일 수 있다.

뒤엣말 ‘단’은 골짜기를 뜻하는 고구려말 흔적이다. ‘단’(丹)을 흔히 ‘붉을 단’으로 새기지만, ‘곡’(谷), ‘홀’(忽), ‘탄’(呑), ‘단’(旦)과 같은 글자와 마찬 가지로 마을이나 골짜기를 뜻하는 ‘골’을 나타냈다. 모두 배달말을 받아적을 우리 글자가 없던 때에 소리만 비슷하다면 어떤 글자라도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동해-괴란-금단이.jpg <조선지형도>와 위성지도(국토지리정보원)에서 보는 금단

뒤쪽에 있는 마을

처음으로 돌아가 ‘금단’ 마을 앉음새부터 다시 살펴보자. 남서쪽 형제봉(483미터)에서 옻재(칠치)를 거쳐 망운봉(338미터)에 이르는 산줄기가 두세두세 서쪽을 막고 망운봉에서 흘러온 산줄기가 동쪽을 막은 데다. 뒤쪽으로는 옻재가 있어 골의 막다른 끝에 있는 마을이니 ‘뒤’(북쪽)에 있는 마을로 볼 여지도 있다. 더욱이 한자 땅이름은 불현듯 나타나지 않는다. 대개 배달말 땅이름에 맞춰 소리나 새김이 그럴듯한 한자를 끌어다 쓰면서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마을 앉음새로 보면 두 마을 모두 그야말로 골짜기 거의 끝자락에 있다. ‘끝’은 ‘뒤’와 의미가 통한다. 우리 겨레는 ‘앞’은 남쪽, 밝음, 봄으로, ‘뒤’는 북쪽, 어둠, 겨울로 생각했다. 단군신화에서 보듯 ‘곰’은 여성으로 둔갑하는데, 여성은 방위에서 뒤(북쪽)를 가리킨다. 그런 까닭에 ‘감/검/곰/고마’는 뒤쪽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금단이라는 마을 이름은 ‘골짜기 끝자락(뒤)에 있는 마을’이라서 ‘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한자로 적으면서 ‘금단(琴丹, 金丹, 黔丹), 검단(黔丹․劍丹)’처럼 되었다. 이때 터무니없는 한자를 찍어 붙인 게 아니라 본디 마을 이름을 한자 소리나 뜻, 뜻소리로 엮되 되도록 좋은 뜻을 담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충청도 공주의 옛 이름은 ‘고마나루’, ‘곰나루’다. 이때 '고마/곰'은 곰 전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오히려 공주 '북쪽'에 있는 나루로 볼 때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본디 뜻을 살펴 쓰자면 ‘북진(北津)’이라야 하지만 ‘북(北)’보다는 ‘곰(熊)’이 더 좋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길게 말했지만, ‘금단’이라는 땅이름은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단/곰단이라고 한 게 뿌리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금단’ 같기도 하고 ‘검단’ 같기도 한, 트릿한 소리가 바뀌었고 이를 한자로 적을 때 ‘금’이든 ‘검’이든 뜻이 좋은 글자로 골라 썼다고 봐야 한다.

다만, 동해시 괴란동 금단 마을은 마을 뒤쪽에 있는 ‘옻재’와 이어 마을 이름 유래를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배달말 한입 더

옹춘마니 소견이 좁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

발꿈치 발의 뒤쪽 발바닥과 발목 사이의 불룩한 부분. =발뒤꿈치.

팔꿈치 팔의 위아래 마디가 붙은 관절의 바깥쪽. (※ ‘-꿈-’은 뒤쪽을 뜻하는 ‘곰’이 뿌리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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