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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탄생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42) 망상, 마상평, 마평,마루뜰, 말웃뜨루

by 이무완

[일러두기] ''처럼 붉고 굵은 글씨는 아래아(·)를 ‘ㅏ’로 쓴 글자임.


망상, 이치에 어긋난 삿된 생각이 드는 곳?


어떤 땅에 이름을 붙이고 쓰는 일은 그 땅을 다른 곳과 구별 짓고 우리 눈 안에 두려는 행위다. 자연히 모든 이름에는 어떤 유래가 있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으면서 눈길을 잡아끌고 기억에 오래 남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망상'이란 땅이름은 고개를 삐끗 꼬게 한다. 이를테면 ‘망상’이라는 땅이름을 말하면 열에 일고여덟은 왜 ‘망상’이냐고 되묻는다. 이치에 어긋나는 삿된 생각을 뜻하는 ‘망상(妄想)’을 떠올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런 말을 어째서 땅이름으로 썼느냐는 물음도 섞였다. 왜 망상인가? 지역 사람들한테 물어도 예부터 써온 이름이지만 말밑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마침 토박이가 설명한 유래가 있어 들어본다.


망상(望祥)은 속칭 ‘마루뜨루’ 또는 마상평(馬上坪) 등으로 불리어 왔으나 망상(望祥)의 어원에서 말과의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속칭 ‘망생이’는 말의 새끼를 가리키는 ‘망아지’의 방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과 관련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 땅이름 망상(望祥)은 ‘마상평(馬上坪)’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연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예전에 망상을 속칭 ‘망생이’로 불렀다고 전하며, ‘망생이’가 말의 새끼를 가리키는 ‘망아지’의 방언인 점을 고려하면 말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윤종대, 동해시 땅이름 이야기, 북퍼브, 2024, 24쪽)


윤종대는 ‘망상’은 ‘마상평’에서 온 말로 보면서 ‘말(馬)’과는 관련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면서 말끝을 얼버무린다.

망상.jpg 옛 지도에서 찾아본 '망상'


맨 처음 ‘말웃뜨루’가 있었다

‘마상평’을 지역말로 풀면 ‘말+웃+뜨루’로, 잇달아 소리 내면 ‘마루뜨루’, 곧 ‘마루뜰’처럼 된다. 사람에 따라 말우뜰, 마루뜰, 말웃뜨르, 말뜨르라고도 하겠지. 기본꼴인 ‘말웃들’(마루뜰)과 소리로 보면 모두 어금지금하다. 옛말에서 ‘말’(마라)은 ‘머리, 마루, 머리, 마르’라고도 하는데, ‘높다, 넓다, 크다, 으뜸, 처음’과 같은 뜻이 있다. 알다시피 마상평은 동해시 어귀라고 할 망상나들목 북서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이다. 만우골에서 동서로 흘러온 마상천을 양쪽으로 심곡동 매밑 마을과 초구동 동북쪽까지 싸잡아 가리킨다. 짐작컨대 펀펀한 들이 드문 곳이니 으뜸으로 꼽을 만큼 너른 들이라고 해서 ‘마라드르/말웃드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마라’라는 말밑 의식이 흐리터분해지면서 ‘말’을 ‘마(馬)’로, ‘웃(위)’을 ‘상(上)’으로, ‘드르’를 ‘평(坪)’으로 뒤치면서 ‘마상평’이 되고, ‘말뜨르’는 ‘마평’(馬坪)으로 된다. 더욱이 ‘마상평’이라는 땅이름은 이곳에 눌러 살던 책상물림들 바람도 얹혔다고 볼 수 있다. 말에 오른다는 말은 곧 벼슬길에 오른다는 말 아니겠나. 더러 마상(馬上)이라는 한자말에 이끌려 마루내(마상천)가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말 타고 치열하게 부딪히던 곳이라고 떠벌리는 말재기들도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군와 신라군이 맞서던 경계는 그보다 조금 더 남쪽인 뱀등(부곡동과 평릉동 사이를 가로지르는 산마루)으로 본다.

그렇다고 하면 ‘망상’은 어떻게 생겨난 말인가. 앞서 ‘마상(馬上)’은 글공부하는 선비에게는 벼슬길에 오른다는 은유와 같다고 했다. 벼슬길은 곧 상서로운 일이요 그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뜻으로 ‘마상’과 소리가 어슷한 바랄 망(望) 자, 상서로울 상(祥) 자를 써서 ‘망상’으로 쓴 듯하다.


시골 선비의 바람이 담긴 땅이름, 망상

일제강점기인 1930년, 조선총독부는 <조선국세조사보고>라는 통계자료를 낸다. 여기에 문맹률 조사치를 실었는데, 읽고 쓰지 못하는 까막눈이 열에 여덟으로 나온다. 못살수록 시골 사람일수록 여자일수록 까막눈이 더 많았다. 그 이전 시대라고 다를까. 아마도 한글을 지어내기 전에는 더 했으리라. 더욱이 글로 남기지 않은 땅이름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물에 콩 나듯 겨우 기록으로 남은 이름들이 바로 ‘마상평, 마평, 망상’ 같은 한자 땅이름이다. 문제는 기록으로 남은 이름들은 책상물림들 손을 타면서 말밑에서 곧잘 벗어나는 데 있다. 땅에 엎드려 농사짓고 나물 캐고 고기 잡던, 손때 묻은 말을 한자의 틀에서 받아적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망상’이란 땅이름도 애초 너른 들이라고 해서 ‘마루뜰(말웃뜨르)’이라고 했는데, 한자로 받아적으면서 ‘마상평/마평’이 되었고, ‘마상’이라는 소리와 어슷한 한자에 선비들 바람을 담으면서 ‘망상’으로 둔갑했다고 보아야 한다. ‘망상’을 망아지를 뜻하는 ‘망생이’와 비슷하게 소리 냈다고 해서 말(馬)과 엮으려는 해석도 있는데, 내 보기엔 ‘망상’에 뒷가지 ‘-이’를 붙여 말하던 지역말 버릇 탓에 [망생이/망성이]처럼 소리 낸 것일 뿐 ‘말(馬)’하고는 조금도 얽힘이 없다.

망상의 탄생.jpg 땅이름 '망상'은 어떻게 생겨났나

※ 뒷가지 ‘-이’를 붙여 말하던 지역말 버릇

≪동해시 지명지≫(동해문화원, 2017)에서 찾아보면, 교란이(괴란), 개섬이(개섬평), 고목이(곰목), 다더울이(다더울), 골안이(골안), 금단이(금단), 달방이(달방), 명지목이(명지목), 부심이(부심골), 사자목이(사자목), 작은바란이(작은바란/작은발한), 초록댕이(초록당) 같은 땅이름에서 뒷가지 ‘-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망상’은 1980년 동해시로 되기 전에는 옛 강릉인 명주군이었다. 그런 까닭에 ≪조선지지자료≫(1911)에도 뒷가지 ‘-이’를 붙여 쓴 땅이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포남리(浦南里)/보람이, 산황리(山篁里)/산황이, 백교리(白橋里)/흰달이, 담산리(淡山里)/담산이, 유산리(幼山里)/어름이, 임곡리(林谷里)/숩실이, 어흘리(於屹里)/느리울이처럼 행정 단위인 ‘리(里)’가 소리바꿈으로 ‘이’로 된 듯도 하지만, 원통동(原通洞)/원통이, 괴남동(槐南洞)/괴냄이, 산막곡(山幕谷)/, 후방동(後芳洞)/, 사자치(獅子峙)/사자목이처럼 쓴 데도 보인다. 이처럼 강릉뿐만 아니라 동해와 삼척 지역 말에서 ‘-이’는 땅이름뿐만 아니라 ‘수달이’(수달), ‘색깔이’(색깔), ‘새댁이’(새댁), ‘방굴이’(방울) 같은 말에서 보듯 이런저런 이름씨 뒤에도 곧잘 ‘-이’가 들러붙는다.


배달말 한 입 더

망아지 말의 새끼/ 동해삼척말: 마지, 마아지, 망셍이

강아지 개의 새끼/ 동해삼척말: 가아지, 가ː지

송아지 소의 새끼

병아리 닭의 새끼

꺼병이 꿩의 새끼, 꿩병아리/ 동해삼척말: 꽁병아리

개호주 범의 새끼/ 동해삼척말: 개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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